감사원 전경

. # 서울메트로는 지난달 17일 소규모 인사발령을 냈다. 감사원 지적에 따라 2년 전 보직이 해제된 직원 2명의 직위를 원상회복하기 위해서다. 감사원 감사는 2010년 서울메트로 직원 명의의 투서로 시작됐다. 이 직원은 ‘규정위반인줄 알면서도 윗사람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서울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 공사대금을 선지급했다’고 고발했다. 감사원은 규정위반이라 결론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메트로는 이듬해인 2011년 11월 설치공사 담당자 5명을 면직, 직위해제, 주의 등 징계 처분해야 했다.

징계 받은 직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해 겨울 면직 처분 받은 직원은 자살했다. 선급금은 규정위반이 아닌 업계관행이었다. 서울메트로는 공제조합과 함께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선급금 지급은 정상’이라고 판결했다. 감사원은 기존 결정을 철회했고, 서울메트로는 징계처분을 취소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업계 사정에 문외한인 감사원의 무리한 감사 탓에 직원들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송사를 벌이지 않았다면 평생 고통받아야 했을 것”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감사원이 정책감사뿐 아니라 사업감사까지 벌이면서 피감기관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피감기관은 감사원의 ‘카더라’식 비전문적 감사 행태와 감사관의 안하무인 태도를 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감사관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억지 감사 결과를 내놓는 일이 적지 않다”고 성토했다. 한 공기업 임원은 “(감사관이) 피감기관 임직원을 무례하게 대하기 일쑤고 개인적으로 무리한 요구도 서슴치 않는다”고 말했다.

◆ '~카더라'에 의존한 무책임·비전문적 감사

업계는 감사원의 투서와 제보에 기초한 '~카더라'식 감사에 가장 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투서의 진위 여부를 사전에 판단하지 않는다. 일단 대상 인사부터 소환하고 해당 기관을 들쑤셔놓고 본다"며 "그러다 잘못이 없으면 '아니면 말고' 식"이라고 비난했다.

자료원: 감사원 2012년 감사연보

2011년 11월 감사원에 투서 하나가 접수됐다. 증권투자 관련 공공기관의 고위 임원 정모 씨를 탄핵하는 내용이었다. 투서에는 사생활 문란, 공금 횡령 등 비리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감사원은 정씨를 소환하고 주변인 조사에 나섰다. 주변인 조사는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이 있어야 하지만 감사원은 약식동의서만 받고 조사를 강행했다.

정씨는 감사원으로부터 2개월 가량 고강도 문책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투서는 사실무근’으로 드러났고, 정씨는 감사원에 항의했다. 6개월 뒤 정씨는 2년 임기를 마치고 증권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책임자 처벌 위주의 감사 행태에 대한 원성도 크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KB금융지주는 2008년 3월 카자흐스탄 BCC(뱅크센터크레딧)를 인수했다가 대손충당금으로 1200억원 이상을 쌓아야 했다. KB금융지주 내 투자의사 결정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감사해야 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만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업계는 감사원의 수준 이하 감사행태의 배경을 '전문성 부족'으로 본다. 감사원은 순환보직 체계다.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감사관 대다수가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는다. 1~2년마다 업무 분야가 바뀌다 보니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감기관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어 감사 영역도 방대하다.

1~2년 차 감사역이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를 감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해당 분야의 '초짜'가 와서 무작정 따지고 들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럼에도 머리를 조아려야 할 때면 모욕감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감사원도 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 부서를 신설하기도 하고, 감사관 대상으로 교육ㆍ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또 감사관 대상으로 금융 기법, 자산운용 방식 등 전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 안하무인 태도 "뼛속 깊은 갑(甲)의식"

이성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57)은 올해 초 임직원 앞에서 30대 감사원 사무관에게 면박을 당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까지 지낸 장관급 인사가 감사원 5급 사무관에게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이 위원장이 점심식사 마치고 임직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감사원 사무관이 "왜 새치기를 하느냐"며 이 위원장을 나무랐다. 권익위는 감사원에 공식 항의했다. 감사원도 서둘러 사과했다.

감사원 감사역의 안하무인식 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피감기관 임직원을 피의자 취급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다보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진다. 전직 국민연금 투자심사역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이 감사원 직원을 모셔야 한다. 차라리 검찰 조사가 받기 편하다"며 "감사원 감사에서는 말도 함부로 못한다. 자칫 꼬투리라도 잡히면 심리적 고통이 크다"고 덧붙였다.

감사원의 무리한 감사는 공공기관의 역할을 위축시킨다. 국민연금관리공단 퇴직자 박모씨는 "감사원이 청와대 등 상급기관 지시에 따라 '테마 감사'를 할 때는 발표 건수를 잡기 위해 무리한 감사를 벌이곤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탓에 국민연금이나 한국투자공사(KIC)는 감사원 감사가 나올만한 투자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보신주의'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자료: 감사원 2012년 감사연보


◆ 감사관 인기 高高 "남겨 먹는 수당 짭짤"

감사원 직원도 감사원의 '뼛속 깊은 갑 의식'을 인정한다. 감사원 공무원(7급)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공무원 정보교환 사이트(법률저널)에서 "감사하러 가면 어디 가더라도 대우받는다. 경찰서장도 벌벌 길 정도다. 피감기관의 대우도 융숭하다"고 밝혔다. 한 감사원 공무원은 "각종 수당까지 합치면 봉급이 다른 부처 공무원보다 많은 편이다. 출장이 잦다보니 출장비도 많다. 출장비로 생활하고 월급은 저축해도 된다. 직무도 법원이나 검찰 공무원에 비해 독립적이다"고 밝혔다.

‘직업’으로서 감사원 공무원의 인기는 고공행진이다. 공공기관 소속 한 사무관은 “감사원 공무원은 남겨 먹는 수당이 많다. 행정고시 합격자가 감사원으로 가는 이유는 (남겨 먹는) 월급이 많아서다”고 씁쓸해했다. 감사원은 현재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와 경력 4년 이상 회계사를 뽑아 6급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경쟁률이 10대 1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건 감사원장은 “감사 과정에서 수감기관의 의견을 경청하고 과도한 자료요구나 고압적 자세 등 구시대적 감사행태로 비춰질 수 있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 피감기관 관계자는 “양 원장의 지시는 일선 감사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과도한 자료 요구나 고압적 자세는 여전하다”며 “기관장의 업무 지침이 지켜지지 않는 감사원은 누가 감사해야 하냐”고 비판했다.

감사원 공보담당관실 소속 감사관은 “감독기관 특성상 피감기관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을 상대로 특정 혐의에 대해 수사한다. 이와 달리 감사원은 조직 구성원 전체의 업무상 비리나 실수를 파헤친다. 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