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 고위 인사들이 최근 잇따라 미국 워싱턴을 찾아 작년 말 아베 총리가 태평양전쟁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에 대해 미국 측의 이해를 구했지만 설득에 실패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아베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을 만나 한·미·일 3국 대북(對北)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이 뭔가 조치를 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도 각각 야치 국장에게 "일본이 동북아의 긴장·갈등을 조성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외무성 부대신도 워싱턴에서 미국 조야의 냉랭한 분위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미·일 정부는 공식적으론 회담 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과 전직 고위 관료들이 공개적으로 일본을 비판하는 것에서 미국의 분위기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전까지 미국에선 한국에 대한 비판이 더 우세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일본을 아시아 전략의 기본 축으로 삼는 미국의 전략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국은 최근 일본으로 인해 아시아 전략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아베의 폭주(暴走)'를 방치하는 데 따른 대가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아·태 지역의 주도적 경제 강국이자 민주 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충돌은 이 지역과 전 세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며 "한·일이 관계를 개선하고 긴밀히 협력하는 것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도 아베가 일본에서 득세하면서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폭거를 계속하는 한 한·일 공조가 정상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한·미·일 공조의 정상적인 가동은 3국 모두에 절실하다. 북핵이나 북한 급변 사태가 급박해졌을 때 한·미·일 공조가 튼튼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은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외교적 단절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의 한·일 관계는 한국이 원한 것도 아니고 미국이 바란 것도 아니다. 원인 제공자인 일본이 바뀌지 않으면 풀릴 수 없는 문제다. 의미 있는 일본의 조치 없이 한·일 정상이 만난다고 해도 아베가 다시 도발적 행동을 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 일본이 그런 분위기다. 그 경우 한·미·일 공조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제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사설] 고객 보호 기본 규칙조차 지키지 않은 카드회사들
[사설] 법관 평가, 변협이 신뢰할 만한 기준 먼저 만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