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의 기업 가치가 5년 만에 3.2배나 커졌다. 2009년 미국계 사모(私募)펀드인 KKR이 오비맥주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지불한 가격은 18억달러였다. 그런데 세계 1위 맥주 회사인 AB인베브는 지난 20일 오비맥주의 가치를 58억달러로 평가해 지분을 모두 사들였다. 오비맥주의 몸값이 이렇게 뛴 것은 KKR이 인수한 이후 4년 동안 매출액은 68%, 영업이익은 120%나 늘어난 덕분이다.

오비맥주는 1995년까지 국내 맥주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다 신생 하이트맥주에 밀렸다. 오비는 1998년 전(前) 주인 두산이 계열사를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AB인베브에 팔렸지만 그 후에도 하이트에 눌려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런 오비맥주가 외국 펀드를 대주주로 맞은 이후 2011년 15년 만에 하이트맥주를 따돌리더니 지금은 시장점유율이 60%에 달하고 있다. 국내에서 업계 1위 자리에서 밀려났던 기업이 다시 선두로 복귀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오비맥주의 부활은 대주주가 유능한 전문 경영인에게 전권(全權)을 맡기고 철저하게 성과만을 관리한 데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 KKR은 오비를 인수한 직후 경쟁 업체인 하이트주조 사장이던 장인수 사장을 영입했다. 그는 고졸(高卒) 출신인 데다 외국인 대주주와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필수적인 영어도 못했다. 그러나 대주주는 그의 마케팅 능력을 믿고 인사부터 마케팅까지 경영권을 대부분 위임했다. 장 사장은 외국계 회사가 한국 기업을 인수한 뒤 으레 하는 인력 구조조정 같은 접근법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맥주를 생산하는 데 2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공장에서 막 나온 맥주를 가급적 이른 시간 내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영업 비용을 30% 이상 늘렸다. 계열사도 일절 늘리지 않고 맥주 사업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AB인베브는 오비 지분을 인수하면서 장 사장을 비롯한 지금의 경영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회사를 1등으로 만든 경영진은 회사의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오비맥주는 대주주가 전문 경영인에게 큰 지침만 주고 회사 경영을 맡기면 2등 기업들도 얼마든지 1등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누구보다도 시시콜콜한 일까지 사장·부사장에게 지시하는 우리 재벌 총수들이 오비맥주의 부활에 담겨 있는 의미를 새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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