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민법의 상속 규정을 개정하면서 상속재산 분배와 관련해 유언(遺言)의 법적 효력을 제한하기로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민법은 상속재산 분배는 유언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유언이 없을 때는 생존배우자와 자녀들 간 협의로 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산(遺産)을 배우자와 자녀가 법정 비율인 1.5대1로 나누게 된다.

그러나 민법 개정안 시안(試案)은 배우자가 상속재산 가운데 50%를 먼저 받은 뒤 나머지 재산만 유언이나 협의 또는 현행 법정 비율에 따라 나눠 갖게 했다. 배우자가 50%를 받는 것은 유언으로도 막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숨질 경우 아내 몫 50%는 절대 불가침(不可侵) 유산이 되고, 남편은 아내 몫을 제외한 나머지 50% 재산에 대해서만 유언으로 분배 방법을 정할 수 있다. 아버지가 어느 자녀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유언하면 그 유언은 무효(無效)가 된다.

우리나라 여성은 평생 가족 뒷바라지만 하느라 자기 재산을 따로 모을 수가 없다. 여성이 육아·가사 노동을 통해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한 가정의 재산은 부부 공동 소유이기도 하다. 남편이 죽은 뒤 자식들한테 의지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여성의 노후(老後) 보장을 위해서도 여성에게 법정 상속분을 지금보다 늘려 주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 남편이 재산 형성을 주도하고 아내는 보조 역할을 하는 가정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법원도 이혼 재산 분할 재판에서 여러 요소를 따진 뒤 아내 몫을 20~30% 안팎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상속에서만 남편 뜻에 관계없이 아내에게 무조건 50%를 갖게 하는 것은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발상이다.

유언의 효력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기업 대주주는 아내의 양보 없이는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承繼)시킬 수도 없다. 아내가 대주주의 지분(持分) 중 절반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자녀 사이가 좋은 가정이라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다. 대주주가 재혼한 경우엔 대주주의 후계자가 '새엄마'의 반대로 기업 경영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례도 생길 것이다. 한평생 회사를 키워온 대주주에게 유언에 관계없이 아내한테 유산을 절반 넘기라고 강제하면 어느 기업인이 회사를 더 키워 더 많은 상속재산을 남기려고 애쓰겠는가.

기업은 대주주 외에도 임직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해 키운 사회적 자산이다. 임직원들은 평소 얼굴도 내비치지 않던 대주주의 배우자가 회사 성장에 무슨 공헌을 했다고 대주주 지분 절반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인간이 재산을 축적하려는 욕망은 본능(本能)에 가까운 것이다. 자기가 형성한 재산을 후손(後孫)에게 물려주거나 자기 의지대로 분배하기 위해 결정권을 행사하려는 욕구도 원초적(原初的)이다. 개인의 이런 욕망이 무역을 키우고 기업을 만들어 우리 사회의 부(富)를 창출하는 기반이 됐다. 상속 제도가 재산 형성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사람의 '자기 결정권'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쪽으로 가게 되면 아무도 열심히 재산을 키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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