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은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環頭大刀·고리자루 큰칼)에서 발굴 92년 만에 글자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사지왕(尒斯智王)'.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무덤 주인공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이사지'라는 왕 이름이 어느 고대 문헌에도 나오지 않아 궁금증은 더 커졌다. 진짜 왕인지 귀족의 명칭인지, 무덤 주인공은 맞는지 등을 놓고 견해가 분분했다.

"이사지왕은 금관총 주인공 아니다"

김재홍 국민대 사학과 교수는 1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금관총 학술 심포지엄에서 "이사지왕은 금관총에 묻힌 주인공이 아니다"라고 발표한다. 김 교수는 '이사지왕과 금관총의 주인공'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일반적으로 '금관총 피장자=이사지왕=명문대도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고고학·금석문 자료 등을 살펴본 결과 이사지왕은 칼의 주인은 맞지만 무덤 주인공은 아니다"라고 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테마전 '금관총과 이사지왕'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 새겨진 큰 칼이 전시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칼의 끝 부분을 확대한 모습. '이사지왕'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근거는 환두대도가 발견된 지점. 칼이 목관 내부에서 피장자와 함께 출토된 게 아니라 목관 동쪽의 부장품 궤(櫃) 안에서 발견됐다는 것. 김 교수는 "간혹 왕실 공방에서 만든 물건에 왕의 이름을 새겨넣기도 하는데, 이 경우 명문이 새겨진 시점이 중요하다. 칼이 완성된 상태에서 칼집 아래 장식에 문자를 새겼기 때문에 이사지왕이 칼의 (제작자가 아니라) 실제 주인은 맞다. 하지만 피장자가 칼을 차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부장곽에서 따로 칼이 출토됐기 때문에 무덤의 주인공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사지왕은 자비왕 혹은 소지왕"

김 교수는 "냉수리비·봉평리비 등 신라 금석문 사례를 보면 이사지왕은 귀족이 아닌 신라 왕"이라고 했다. '智'는 신라 남성의 왕족이나 귀족에 붙인 존칭 어미이고, 냉수리비에 적힌 '사부지왕(斯夫智王·신라 18대 실성왕으로 추정)' '내지왕(乃智王·19대 눌지왕)' 등 귀족이 아닌 오직 국왕만을 '○○왕'이라고 칭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사지왕은 누구이며, 금관총에 묻힌 주인공은 누구일까. 김 교수는 "출토된 유물의 연대로 볼 때, 자비왕(신라 20대왕) 또는 소지왕(21대왕)"이라며 "금관총 주인은 이사지왕의 부인 혹은 주변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금관총 출토 문자의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5개의 주제가 발표된다. '이사지왕'이 새겨진 큰 칼의 실물도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금관총 출토 유물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테마전 '금관총과 이사지왕'을 9월 28일까지 연다. (02)2077-9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