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전국 15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 새누리당이 11곳에서 승리했다. 새누리당은 서울 동작을과 수원 등 수도권과 충남 서산·태안 등 충청권에서 전체 9곳 중 한 곳을 빼고는 모두 당선됐다. 새누리당의 예상 밖 압승이고 새정치연합의 참패다. 심지어 야당의 아성인 전남 순천·곡성에서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선거 초반만 해도 여당은 암울한 분위기였다. 여권 사람들 스스로 "3~4석만 건지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여권은 세월호 사건의 짐을 벗지 못한 상태에서 이번 선거를 맞았다. 여기에 더해 안대희 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창극 후보자까지 중도에 물러나고, 장관 후보자 두 명이 낙마하는 인사 파동까지 겹쳤다. 선거 종반에는 유병언씨 시신 발견을 계기로 검(檢)·경(警)의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렇게 여권의 실책이 잇따랐는데도 선거 결과는 새정치연합의 몰락이었다. 통상 재·보선은 정권을 중간평가하는 성격으로 대부분 야당이 크게 이겨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여당이 아닌 야당을 심판했다.

새정치연합은 광주 광산을에 권은희씨를 전략 공천했다. 권씨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경찰 지휘부의 수사 축소 의혹을 터뜨렸다가 법원에 의해 '거짓말'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다. "선거에서 공무원들의 정치권 줄대기를 조장하는 사후 뇌물 공천"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권씨 공천 이후 텃밭인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의 당 지지도가 1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이것이 수도권의 새정치연합 후보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친 것이 재·보선 결과로 입증됐다.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여권의 실책에 올라타 대여(對與) 공세와 흠집 내기에만 몰두했다. 국민은 공직 후보자의 잇단 낙마에 혀를 차면서도 무조건 끌어내리려는 야당의 행태에도 고개를 젓기에 이르렀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사태 발생 이후 지금까지 이 불행한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선거 때는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무리한 주장을 펴면서 정쟁(政爭)을 만들었다.

심지어 투표 전날 야당 원내대변인은 기자회견을 갖고 "(순천 매실밭에서 발견된 시신은) 유병언이 아니라는 경찰관의 증언을 확보했다"면서 '과학적으로 100% 유씨로 확인된다'는 국과수 발표가 조작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국과수가 최첨단 과학으로 유씨의 지문(指紋)과 치아, DNA까지 분석해본 뒤 내놓은 결론을 단 하나의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부정했다. 정부를 무조건 불신하는 일부 세력에 편승해 재·보선에서 몇 표 더 얻으려는 얄팍한 정치 상술(商術)로 볼 수밖에 없었다. 국민은 세월호 비극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야당의 태도에 대해서도 염증을 느끼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정의당과 서울 동작을, 수원 병·정 세 선거구에서 단일화라는 이름으로 '후보 사퇴 거래'를 했지만 두 곳에서 결국 낙선했다. 선거만을 위한 정당 간 후보 단일화는 유권자와 정당 정치에 대한 우롱이나 마찬가지다. 정당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재·보선은 후보 단일화라는 쇼도 이제 점차 효용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야권이 그래도 후보 단일화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면 차라리 하나의 당으로 합치는 게 당당한 길이다.

새정치연합은 생존(生存)의 기로에 서게 됐다.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는 '새 정치'라는 말을 희화화하는 잇단 실책으로 국민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았다. 새정치연합이 이번에도 국민의 분명한 뜻을 왜곡하고 정파 이해에만 매달려 정쟁에만 힘을 쏟는다면 조만간 더 심각한 국민의 심판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새정치연합이 앞으로 갈등을 만들고 증폭시키는 세력이 아닌 합리적 대안(代案) 정당으로 국민의 믿음을 얻느냐에 달려있다.

새누리당은 이번의 예상 밖 승리가 자력(自力)으로 이룬 게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유권자들은 야당의 행태를 심판했으나 정부·여당의 무능에 대해 눈을 감은 것은 결코 아니다. 새누리당이 야당의 자멸로 얻은 반사이익에 도취돼 어둡고 암울했던 처지를 잊어버린다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이제 2016년 4월 20대 총선까지 20개월 동안 큰 선거가 없다. 박근혜 정부로선 가장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성과를 내야만 하는 집권 2~3년 차이기도 하다. 여당은 이번에 유권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잘 새겨야 한다. 그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국가 혁신과 경제 활성화가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이다. 여권이 이런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잊는 순간, 황금과도 같은 20개월은 허송세월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성공한 정부'도 물거품이 될 뿐이다.

[[사설] 지역주의 무너뜨린 이정현과 순천·곡성 주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