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20일로 127일째가 됐지만 여야(與野) 정치권은 아직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지 못하면서 덩달아 다른 법안들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한국 정치도 침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20일 경기도 안산에서 총회를 갖고 여야가 지난 19일 내놓은 합의안에 대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가족들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것"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세월호특별법 처리는 기약 없이 표류하게 됐다.

무릎 꿇은 야당 -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사고 유가족 농성장을 찾아가 38일째 단식 중인‘유민 아빠’김영오씨를 만나고 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김씨의 손을 잡은 채 대화를 나눴다. 박 위원장은“저희들이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 유민 아빠가 건강을 회복해야 우리도 힘이 난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박근혜 대통령이 만나주면 말씀을 들어보고 단식을 중단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든 것은 지난 7월 11일이었다. 여야 관계자에 따르면 TF는 공식 회의만 20차례 가까이 했고, 여야 원내대표도 수십 차례 회동했다. 그 결과 두 차례 합의를 이뤄냈지만 합의안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대에 번번이 부딪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 정치권이 한 달여 동안 법안을 만든다며 머리를 맞댔지만 정작 이해 당사자인 유가족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결과"라고 했다.

유족 반대를 이유로 1차 합의를 뒤집은 새정치민주연합은 19일 의총에서도 2차 합의안 추인을 유보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원내 130석 정당이 유족의 반대에 가로막혀 합의안을 뒤집은 것은 책임 있는 정치 세력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법 체계와 원칙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한 유족들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특별법이 처리되지 못하면서 국회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여야 원내대표가 동시 취임한 5월 8일 이후 국회 본회의가 9차례 열렸지만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야당은 "세월호특별법의 타결 없이는 다른 법안 처리는 없다"고 했고,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런 야당을 설득해내지 못했다. 결국 세월호 사고로 드러난 적폐(積弊) 청산을 위한 정부조직법, 김영란법(부정 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 충돌 방지법) 등 세월호 재발(再發) 방지법과 19건의 경제 활성화 법안 등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야당은 특별법을 볼모 삼아 걸어 잠근 국회 문을 이제 열어야 하고, 여당은 이를 위해 정치력을 더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