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요양병원, 복지관, 주민센터, 탑골공원…. 어딜 가나 노인들은 아프고 외롭고 돈 없는 '마지막 10년'의 삼중고를 호소했다. 수명은 늘었는데 건강은 안 받쳐주고,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계속 잘게 쪼개지고, 모아둔 돈은 동났는데 여생은 아직 길다고 했다. 이분들은 모두 '공감'에 목말라 했다. 우리 사회가 마지막 10년의 삼중고를 '노인이 겪는 일'이 아니라 '모두가 겪을 일'로 여겨주길 바랐다.

아흔 어머니의 고백

안유선(가명·91·인천 남구) 할머니는 1500만원짜리 단칸방(17㎡·5평)에 혼자 산다. 할머니는 "이 방에서 이렇게 외롭게 죽기 싫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살다가 며느리와 불화했다. 30년 전 할머니는 "너희들끼리 잘 살라"며 아들 집을 뛰쳐나왔다. 그 후로는 일흔 넘도록 남의 집살이로 먹고살았다.

여든 넘어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왔다. 조카딸이 여기 산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생판 모르는 남 대신 조카딸이 시신을 거둬주길 바랐다.

"원래는 아들 집에 가고 싶었어. 아들한테 '너희 집 근처로 이사 가면 안 되겠느냐'고 했지. 며느리가 반대했어. 낮에는 혼자 집에서 성경책을 읽어. 점심은 주민센터에서 먹고. 봉사단체 사람들이 김치 주러 와. 교회 사람들은 요양원에 가라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기 싫었어. 밤이면 혼자 있는게 무서워 가끔 울어."

여든 아들의 고백

박창수(가명·79·서울 영등포구)씨는 철물점 하다가 몇 년 전 힘에 부쳐 그만뒀다. 경기도 김포 텃밭에서 상추·고추·고구마 길러 주위와 나눠 먹는 게 낙이었다. 하지만 3년 전 어머니가 노환으로 쓰러진 뒤론 텃밭에 한 번도 못 가봤다. 그는 매일 어머니 기저귀를 갈고, 목욕도 시켜 드린다.

"힘들지요. 저도 나이 먹었잖아요. 하지만 죽 대신 밥 드시게 된 것만도 기뻐요. 마누라는 이 나이에도 화장품 공장에 나가서 용돈 벌어요. '돈 벌지 말라'고 해도 '집에 있는 건 더 못하겠다'면서 기어이 가요."

최근 여동생이 자기가 병원비를 댈 테니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자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오빠도 이제 편히 살라"고 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버럭 화냈다. "살아계신데 모셔야지 어떡합니까? 어머니 연세요? 올해 100세입니다."

마흔 의사의 고백

허은영 서울 보라매병원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 응급실에 같은 증세로 계속 오시는 노인들을 보고 이해가 안 갔다"고 했다. 암 같은 큰 병이 아니라 기도나 폐에 염증이 생긴 경우였다.

"쭉 지켜보고 알았어요. (부인 없이) 열악한 집에서 혼자 술 먹고 밥 먹고 쓰러져 주무시다가 음식물이 폐에 들어가 염증이 생기는 거예요. 죽기 직전 이웃에 발견돼 병원에 오고, 퇴원하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 거죠." 노인들은 그런 식으로 1~2년 동안 나타나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돈 있으면 자식 한 번 더 볼까봐"

조영숙(가명·71·서울 중랑구) 할머니는 사기 피해자였다. 재작년 지하철에서 웬 아줌마가 "나이 먹은 사람도 뽑아주는 회사가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심심해서 따라가 보니 솔깃했다. 토지 개발 회사라면서, 시골 땅을 수십 평 사면 3개월 안에 개발 수익을 돌려주고, 자기네 콜센터 사원으로 채용한다고 했다.

평생 모은 쌈짓돈 6900만원을 쏟아부었다. 사기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한 돈을 주지 않았다. 계속 새로운 손님만 모집하라고 했다. 작년 초 경찰이 "지금 다단계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데 할머니도 피해 보신 것 같다"고 연락해왔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산 땅은 맹지였다. 수천 평짜리 맹지를 몇 십 평 단위로 잘게 쪼개서, 할머니들에게 비싸게 팔아넘기고 콜센터 영업까지 시킨 것이다.

할머니는 "일흔 넘으니 오라는 데도 없고 써주는 사람도 없고, 아들과 살아도 늘 외로웠다"고 했다. "낮 동안 그 회사 나가서 앉아 있으면 외롭지 않았어요. 사기꾼들이 말했어요. '어머니, 돈 있으면 자식 눈치 안 봐요. 용돈 주면 자식이 한 번 들여다볼 거 두 번 들여다봐요.' 그 말에 다들 넘어갔어요."

"나를 찾는 할아버지들이 안 됐어"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값싼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짙은 색조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모인 할아버지들과 2만원 받고 여관에 가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였다. 2만원 중 1만원은 여관비로 쓴다.

"아침마다 화장하고 지하철 타고 인천 집에서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와요. 그날 만난 할아버지들이랑 가까운데 놀러도 가고, 점심도 얻어먹어요. 그런 날 저는 오늘 하루 잘 살았다'고 생각해요. 한 세상 혼자 살다 가는 거예요. 다들 힘들게 살았고, 살날도 얼마 안 남았어요."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다. 한 달에 나라에서 35만원 나오는데, 그걸로 방값 내고 기름값(난방비) 내고 휴대전화 요금을 낸다. "곳곳이 아픈데, 어떨 때는 한 달에 약값만 100만원 가까이 들어서, 먹고살려고 탑골공원에 나오고, 외로워서도 온다"고 했다.

"자식들도 못사니 기댈 데가 없고요. 여기 오는 할아버지들, 다들 참 안됐어요. 우리 같은 할머니 만나서 아들ㆍ며느리 흉보고, 여관도 가고, 때론 자식 몰래 살림도 차려요. 더운 날, 할아버지들이 1000원짜리 하드를 사줄 때가 있어요. 고맙죠. 우리 다 외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