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 말기암으로 양볼이 움푹 꺼진 70대 할머니가 의식 없이 누워있었다.

할머니는 2년 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기엔 늦었고, 항암치료도 안 들었다. 요양병원에 10개월쯤 머물렀다. 상태가 나빠질 때마다 앰뷸런스로 이곳 응급실에 실려왔다. 그때마다 MRI와 CT를 찍고, 혈액검사를 하고, 정맥주사를 맞았다. 네 번째로 왔을 때 중환자실에 들어가 인공호흡기를 꽂았다. 의료진이 "버티고 계시지만 임종이 가깝다"고 말했다.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악순환이죠. 환자분이 요양병원에 계실 때 '돈 많이 드니까 이제 큰 병원 보내지 마라. 나는 정리했다'고 하셨다는데, 막판에 위중해지니 자식들이 '차마 가만있지 못하겠다'며 도로 모셔왔어요."

의학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하길 바라는지, 부모 자식이 건강할 때 터놓고 얘기하는 문화가 한국엔 없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다 해보자"고 매달려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풍토와 고령화가 맞물려 개개인의 마지막 1년이 황폐해진다"고 했다.

어느 정도 심각할까. 취재팀은 박유성 고려대 교수에게 의뢰해 2003~2010년까지 한국인 100만명의 생로병사 과정을 담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사망하기 전 마지막 1년 동안 보통 사람 한 해 의료비 12년치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모두 포함한 전체 인구를 보면, 한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은 1년에 평균 65만원을 의료비로 썼다(2010년 기준). 건강보험 혜택과 개인이 낸 돈을 합친 액수다. 반면 마지막 1년을 보내고 사망한 사람들은 한 해 평균 795만원을 썼다.

사망 원인 1위인 암만 따로 떼면 더 심각했다. 암 사망자가 마지막 1년 동안 쓰는 돈은 983만원으로 일반 국민 의료비 15년치, 60세 이상 노인 의료비 6년치였다.

문제는 의료비가 많이 든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왜 이렇게 많이 드는가' 하는 점이다. 분석 결과, 마지막 1년 중에서도 뒤로 갈수록 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이 뚜렷했다. 마지막 1년 의료비 중 3분의 2가 마지막 석 달에 들어가고, 마지막 석 달 의료비 중 절반 이상이 마지막 한 달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연명치료는 발달하는데 호스피스는 지지부진한 현실이 있다. 그 바람에 고통은 고통대로 겪으면서 비용은 비용대로 지불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박유성 교수가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더 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할 다음 세대는 정말 희망이 없다"고 했다.

암의 역설

예기치 못한 역설도 나타났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암=가장 돈 많이 드는 병'이라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에 관한 한 이런 통념은 사실이 아니었다. 암 말고 다른 병으로 숨지는 사람들이 암으로 떠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개인 돈을 더 쓰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체 사망자를 대상으로 마지막 1년 의료비 중 개인이 낸 돈을 구해보니 1인당 115만원이었다. 암 사망자만 따로 뽑아서 같은 수치를 뽑아보니 이보다 45만원 적은 70만원이었다. 반대로 마지막 1년 동안 건강보험 혜택은 암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보다 234만원 더 받았다.

과거와 비교해도 같은 추세가 나타났다. 2003년과 2010년을 견줘 보니 전체 환자의 경우 평소 의료비건, 마지막 1년 의료비건, 개인이 내는 액수가 점점 커졌다. 평소 의료비 중 본인 부담금은 7년 새 7만원, 마지막 1년 중 본인 부담금은 38만원 늘어나는 식이었다.

반면 암 환자는 개인이 내는 돈이 오히려 줄었다. 평소 의료비 중 본인 부담금은 7년 새 7만원, 마지막 1년 중 본인 부담금은 44만원이 감소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박유성 교수는 "암이 워낙 고통스럽고, 환자도 많고, 치료비도 비싼 악명 높은 병이다 보니 정부가 암부터 복지 혜택을 몰아줬는데, 그러다 보니 다른 병과 '혜택 격차'가 벌어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정부는 암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왔다. 그 자체는 옳고 필요한 조치였지만 그 결과 오히려 암 말고 다른 병이 재정적으론 더 부담스럽게 됐다는 것이다.

어디서 죽느냐

또 마지막 1년 동안 쓰는 돈이 해마다 불어나는 추세가 병원 규모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요양병원·일반병원 중 어느 곳에서 임종한 사람이건 같은 장소에서 2003년에 숨진 사람들에 비해 의료비를 1.8~1.9배씩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기준 상급종합병원에서 숨진 사람들이 마지막 1년 동안 쓴 돈은 건강보험과 개인 돈을 합쳐 780만원, 요양병원은 507만원, 일반병원은 192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