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광주광역시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광장. 대형 트럭에서 한국전쟁 당시 진주와 경산에서 학살된 민간인 유해가 든 컨테이너 두 대가 내려졌다. 이어 버스에서 내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이 까만 눈가리개를 한 채 광주 민주화운동 유가족과 손잡았다. 상처를 공유한 이들이 지역감정을 초월해 치유의 랑데부(서로 만남)를 했다. '2014 광주비엔날레' 개막(5일)에 앞서 이날 열린 언론 설명회에서 선보인 작가 임민욱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였다.

임민욱의 퍼포먼스가 압축해 보여주듯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정치적이다. 직설적이다. 전복적이다. 20주년(10회). 국제 비엔날레로서 안정 궤도에 진입하는 동시에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시점에서 광주는 충격 요법을 택했다.

미국 부부 작가 에드워드 키엔홀츠와 낸시 레딘 키엔홀츠의 작품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 전시가 열리는 장소에서 ‘당신의 정부에 만족하십니까’라는 설문을 한 뒤 그 답을 말 배에 매달린 지도자 이마에 붙인다. 광주 시민의 답? 사진에 보이듯 ‘No’다.

영국 테이트모던 수석 큐레이터인 제시카 모건 총감독이 내놓은 주제는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 1980년대 뉴욕 출신 펑크록 그룹 토킹 헤즈의 노래에서 따왔다. '터전'은 기성 제도, 낡은 관습, 각종 차별을, '태우다'는 시위, 반항, 변화 등을 의미한다.

"물리적으로 태우려는 시도가 많다"는 모건 총감독의 얘기가 농담이 아니었다. 전시장 초입부터 연기 냄새가 가득하다. 광장에 설치된 미국 작가 스털링 루비의 난로에선 진짜 연기가 피어오른다. 전시장 외벽엔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거대한 문어가 그려졌다. 2004년 영국 터너상을 받은 제러미 델러의 작품이다. 영국 작가 코넬리아 파커가 숯으로 만든 설치물처럼 전반적으로 숯·불 등을 직접 활용한 작품이 많다. 이를 두고 "표피적이고 일차원적 해석"(미술평론가 정준모), "문자 자체(literal)에 너무 집착했다"(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비판과 "일반 관객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이숙경 2015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기획자)라는 옹호가 오갔다.

전시장 외벽엔 문어(제러미 델러 작품)가 그려졌고, 그 앞으로 미국 작가 스털링 루비가 만든 난로에서 진짜 연기가 피어오른다.

비엔날레 성패의 8할이 총감독의 역량에 달렸다고 한다면, 총감독 역량의 8할은 네트워크(인맥)이다. 좋은 작가를 섭외하는 능력 말이다. 이 점에서 모건 총감독은 성공적으로 능력을 발휘했다. 카르슈텐 횔러, 올라푸르 엘리아손, 가브리엘 오로스코 등 테이트모던에서 전시를 열어 자신과 인연 깊은 세계적 작가를 여럿 데려왔다. 그렇다고 유명 작가에만 집중한 건 아니다. 38개국 작가 103개팀(413점)이 참여했는데 레바논·과테말라·키프로스 등 제3세계 출신이 부쩍 늘었다. 90%가 처음 참여하는 작가다. 이불·윤석남·성능경 등 한국 중견 작가도 처음 참여했다. "기존 방식을 불태우기 위해선 '새 피' 수혈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참신한 미장센(전시장 연출)이 전시 전체를 돋보이게 했다. 연기를 작은 점으로 표현한 이미지 작품(디자인 그룹 엘 울티모 그리토)을 전시장 벽면 전체에 붙여 일관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20세기 이후 전시장의 전형이 된 하얀 벽면마저도 전복해야 할 '터전'으로 삼은 것 같다.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있는 '액자소설'처럼 전시 안에 전시가 들어간 제3전시실의 실험적 기법도 눈에 띈다. 이곳엔 작가 우르스 피셔가 자신의 뉴욕 아파트 이미지를 벽지로 만들어 집처럼 만든 공간이 연출됐다. 이를 배경으로 일본 작가 도모코 요네다 등의 작품이 전시됐다. 배형민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건축 큐레이터)는 "역대 광주비엔날레 연출 중 최고였다"고 호평했다.

워밍업 삼아 준비했던 특별전에서 일어난 '홍성담 사건'의 불똥이 본전시에까지 튀진 않을까 우려가 컸지만, 이날 공개된 본전시는 홍성담 사건을 작은 불씨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실험 정신을 보여줬다. 전시 11월 9일까지. (062)608-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