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長壽)가 축복이 되려면 '마지막 10년'을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취재팀이 통계개발원 조사연구실 오진호 사무관에게 맡겨 세대별 인생 패턴을 분석한 결과, 젊은 세대로 갈수록 오히려 준비가 어려워졌다.

52년생 "살 날은 많은데…"

한국은 사회 변화가 워낙 빨라, 나이 차이가 10년만 벌어져도 세대가 갈라지고, 각자의 난관도 전혀 다르다. 현재 일하는 한국인은 크게 네 세대다. 실제로 취재팀이 만나본 네 세대는 차이가 뚜렷했다.

우선 52년생 강옥규(가명·62)씨. 박근혜 대통령과 동갑이다. 충남 부여에서 열여섯 살에 상경해 안 해본 막일이 없다. 목공소 하다 문 닫고, 목수 일로 일당을 번다. 작년 여름 손을 다친 뒤 돈벌이를 못 했다. 그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틴다"고 했다.

"모아둔 돈도 없고, 써주는 데도 없어요. 마누라가 시장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몸이 안 좋아 관뒀어요. 저도 당뇨가 있습니다. 당장 내년에 아들이 장가가는데 보태줄 능력이 안 돼요. 올 추석에 차례 지낼 비용도 부담스러워요. 마지막 10년? 겁나죠. 근데 대책이 없어요."

62년생 "우린 샌드위치 신세"

이봉균(가명·52)씨는 62년생 81학번이다. 경기 좋을 때 취직해 20년 직장생활 하다가 지금은 꽃집을 한다. "요즘 젊은 애들보다야 취업이 쉬웠지요. 하지만 저희 또래는 위·아래에 치여 노후 대비를 못 했어요. 40~50대엔 애들 교육비 대느라 정신없었고, 지금은 노모(81) 간병비가 월 300만원 들어요."

그는 간간이 대리운전을 나간다. "마지막 10년을 생각하면 불안하다"고 했다. "저는 국민연금도 몇십 만원 안 나와요. 아직 반도 안 살았다고 생각해요. 장례지도사를 포함해 자격증을 18개 따놨어요. 자식들한테 '(대학 이상은) 너희들 힘으로 공부하라'고 했어요. 주위 친구들 보면 다들 아직 정신 못 차렸어요. '그래도 자식이 우선'이라고 해요."

75년생 "기회가 없는 세대"

서정수(가명·39)씨는 75년생 94학번이다.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94' 주인공이 이 세대였다.

군사독재가 무너진 뒤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즐겼지만, 대학 졸업할 때 IMF 위기가 닥쳐 '원조 취업난'을 호되게 겪었다. 간신히 취업한 뒤 집값 뛰는 게 겁나서 8000만원 대출 끼고 30평 아파트를 샀다. "원금요? 6년째 이자만 물고 있어요."

세차장에서 시급 받는 60대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끝까지 직장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자신없어요. 우리 회사 정년이 58세지만, 쉰 넘으면 다 나가지, 그거 채우는 사람 못 봤어요. 저도 마흔인데…. 마지막 10년보다, 당장 10년 뒤가 걱정이에요."

84년생 "장가도 못 가는데…"

이성경(가명·30)씨는 취업난이 워낙 심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이른바 '삼포세대'다.

최근 주위 사람이 연금 들라고 권하길래 속으로 '결혼할 돈도 없는데 무슨…' 했다. "대출 없인 서울에 전셋집도 못 구해요. 저보다 큰 회사 다니는 친구들도 부모님 도움 없인 결혼도 못 하고 집도 못 사요. 나중에 우리가 나이 먹으면? 나라에서 어떻게 해주지 않을까요? 개인이 뭘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잖아요?"

동갑내기 공무원 장인선(가명·30)씨는 "간신히 취업하고 결혼해도 목돈 들어갈 일이 줄줄이 보여 노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고 했다. "어, 저희 말고 부모님 노후요? 요즘 부모님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거의 없잖아요. '용돈 정도 드리면 되지, 내가 잘 먹고 잘살면 되지' 하는 성향이 강해요."

물고 물리는 부담

오진호 사무관은 "위의 두 세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고, 아래 두 세대는 위 세대가 고생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저축을 하거나 자산을 불릴 기회가 없다"고 했다. 결국 세대가 내려갈수록, 준비 없이 노년에 접어드는 사람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