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 기자] 생방송을 방불케하는 쪽대본, 촉박한 촬영 일정 등 한국 드라마의 제작 환경이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옹호론'으로 대두되는 게 시시각각 변하는 시청자 반응을 넣을 수 있어서 오히려 완성도가 올라간다는 주장. 그러나 현실은 시청자 반응은 커녕 대본도 채 연구하기 힘들 정도로 숨가쁘게 마련이다.

그러는 사이 국내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는 드라마의 영역을 넘어 영화의 완성도를 넘볼 수 있게 된 상황.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11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콘텐츠 인사이트 2015'에 참석한 존 데이비드 콜스(John David Coles) 감독으로부터 드라마가 어디까지 진화하고 있는지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하우스오브카드'의 시즌3 총 책임 프로듀서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웨스트윙', '그레이 아나토미', '섹스앤더시티' 등도 연출한 바있다.

# 영화에서 케이블 드라마로

"한때 영화에 큰 꿈을 품었지만, 사람들이 예전과 같이 영화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러다 TV가 점차 영화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1970년대만 해도 드라마는 값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 버금가는 이야기들이 TV를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가 스토리 위주보다 블럭버스터로 집중되는 동안, 좋은 이야기가 케이블 TV로 모였다. '섹스 앤 더 시티'를 만든 것은 내 인생의 변환기였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보편 정서를 다루는 지상파와 달리, 케이블 TV는 특정 시청자를 대상으로 특별한 이야기를 했다. '브레이킹 배드'가 그 예다. 케이블 드라마는 특히 주인공을 깊이 있게 탐구해서, 배우가 그 캐릭터를 점점 더 잡아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드라마 2회 찍는데 22일 소요

한국 드라마의 한회를 촬영하는데에는 길어야 3~4일이 걸린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배 이상의 시간을 투입했다.

"영화의 호흡처럼, 에피소드 2개를 한꺼번에 제작한다. 그 두개를 만드는 데에는 22일 정도 소요된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 등을 작업한 데이빗 핀처 감독이 '하우스 오브 카드'를 끌고 가고 있는데, 그는 이 드라마가 영화 같길 바랐다. 촬영 등에 당연히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을 나눠서 진행한다. 그래야 영화적 기법을 살릴 수 있다."

# 같은 드라마, 다른 연출자

"나는 시즌2에서 에피소드 3개, 시즌3에서 1~2편 에피소드만 직접 연출했다. 시즌3의 나머지 11개 에피소드는 다른 감독이 연출했다. 에피소드마다 연출자가 다르지만, 큰 문제는 없다.

대부분 3개월 정도 호흡을 맞추고 각자 20일에서 23일 정도의 촬영 기간을 갖는다. 한 명의 디렉터가 한 방향으로 꾸준히 이야기를 몰고 가고, 각자 촬영을 한 후 디렉터들이 모두 모여서 공동 편집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첫번째 시즌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이 분명히 비전을 제시했다. 새 감독이 들어오면 이를 바탕으로 새 스타일을 부여해보라고 한다. 나는 지금 시즌3의 총 디렉터로서 아래 5명의 디렉터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 시즌 사전 준비 기간 5개월

"제작을 한지 5개월, 6개월 정도가 지나게 되면 시리즈, 시즌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다 만들어 놓고 대기를 하게 된다. 다 같이 작가실에 앉아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갈지 큰 아이디어를 제안을 하고 전략이라던지 캐릭터라던지 관계를 어떻게 끌고가는지 이야기를 하고 그 대주제에 맞춰서 스크립트를 짠다. 그리고 각각의 작가들이 붙어서 대본을 전개시킨다. 거기에 맞춰서 촬영 스케줄을 짜고 재원을 할당한다. 이후 배우들과 모의 연기를 해보고 대본을 수정한 후 촬영에 들어간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정치 이야기였기 때문에 조사가 많이 필요했다. 캐빈 스페이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던 국회의원들에게 많이 질문을 했었다. 계속 꾸준하게 연구 자료 조사가 이뤄졌는데 미국 정치에 조언을 줄 수 있는 그런 부분에 조사가 많이 이뤄졌었다. 시즌3 첫번째 5개는 2014년 1월에 조사를 시작해서 첫촬영이 있었던 2014년 6월까지 계속 준비했다. 촬영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스토리를 발전시켰다."

# 주인공의 심리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흔히 드라마는 대사들을 쭉 나열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드라마 역시 영화처럼 행동을 통해 심리를 '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심리를 하나의 행동으로 연출하는 게 감독의 몫이다. '베이츠모텔'의 한 장면을 보자. 두 인물이 어색했다가 점차 친해지는 게 등장인물의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가 해당 장면을 얼마나 이해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연출자 혼자 의미를 알아서 뭐하겠는가.

'하우스오브카드'의 예를 들면, 언더우드 부부와 경호원 한명의 정사씬이 있었다. 맨 처음에 이 장면을 찍었을 때 어떻게 연출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배우를 다 불러놓고 솔직하게 얘기를 했었다. 서로에게 몸의 행동 방향이라든지 그런 것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서로 허락을 받도록 했다. 그래서 세 명이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됐고 실제 장면처럼 잘 연출됐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인데, 논란이 일기도 했던 장면이다."

# 시청자가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

이제 케이블을 넘어 인터넷 드라마 서비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공한 넷플릭스는 한번에 에피소드 13개를 한꺼번에 공개, 시청자들이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리지 않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도록 해뒀다.

"사실 도박이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그렇게 한꺼번에 공개하겠다는 아이디어가 기술력과 조합이 돼서 흥행에 성공됐다고 볼 수 있다. 난 긍정적으로 본다. 큰 성공을 거뒀으니까(웃음). 우선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을 바꿨다는 점이 새롭다. TV는 19세기의 소설책인 것 같다. 그런데 이젠 시청자들이 드라마 시리즈를 자기 마음대로 볼 수있는 거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그 시간에 맞춰서 하나씩 보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만큼, 볼 수 있게 권한 줬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당시 소설이 신문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그런 부분이 비슷하다고 본다. 그동안 '하우스 오브 카드'는 13개 에피소드씩 시즌 2개를 선보였다. 이는 프랜시스 언더우드를 탐구하기에 굉장히 긴 시간이다. 다른 경찰 수사 드라마는 캐릭터는 같지만 매 에피소드가 다르다. 그와 달리 '하우스 오브 카드'는 26개 에피소드가 언더우드를 굉장히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런 부분이 더 심층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한다."

# 악역이 주인공이 됐다

'하우스오브카드'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프랜시스 언더우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일반 드라마라면, 악역 정도에 머물렀을 캐릭터. 그러나 이 드라마는 언더우드를 오히려 사랑받는 캐릭터로 만들어냈다.

"우선 캐빈 스페이시가 아니었다면, 안됐을 것이다. 그니까 가능했다. 극중에서 언더우드를 연기한 스페이시가 악행도 하고 정치적으로 부도덕한 일을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기 때문에 바로 그부분에서 사랑받지 않았나 한다. 드라마 중에서 보면 캐빈 스페이시가 카메라를 보고 시청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연출하는데 그 부분이 시청자에게 실제 얘기하는 듯한 가까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지 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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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콘텐츠 진흥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