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oftware·이하 'SW') 개발로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중·고등학생이 늘고 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확정되는 '2015학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2018학년도부터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SW 교육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일찌감치 SW 교육을 받아 뛰어난 성과를 낸 배현승(경북 상주고 3)군, 박성범·윤형근(경기 이우고 2)군, 박민주(인천 청라중 3)양을 만나 봤다. 이들은 모두 "SW 분야는 상상만 하던 세계를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 낼 수 있어 재미있다"며 "수학·국어를 공부할 때와 달리 노력한 만큼 뚜렷한 성과가 나와 성취감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과 범죄 예측 프로그램 만들어

배현승군은 미국 퍼듀대(Purdue University) 컴퓨터공학 연구실에서 SW 해외 연수를 받고 지난 2월 말 귀국했다. "미국에서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의 상황과 범죄 유형 등을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경찰에 전달하는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미국 현지 기업인과 함께 기존 범죄 예측 프로그램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연구를 진행했죠." 배군은 현재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는 SW 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SW마에스트로' 5기에 참여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100명 선발에 600여 명이 지원할 만큼 인기가 높다. 배군은 한 달에 100만원씩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생·대학원생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배군이 처음 SW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평소 좋아하던 게임을 직접 개발하면서부터였다. 배군은 "제가 만든 게임을 대중들이 즐긴다는 것에 감동을 느꼈다"며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인디 게임을 만들며 게임 엔진과 서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사실 배군은 재작년에도 SW마에스트로 과정에 지원했지만 나이가 어려 탈락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개발한 게임 관련 성과물을 보여주며 SW 분야 인재가 되고 싶다고 자신감을 피력해 5기 과정에 합류할 수 있었다. 배군은 "현재 모바일 게임의 서버를 제공하는 클라우드 시스템 '랜카스 아이오'를 만들어 게임 회사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며 "이 서비스가 모바일 게임 회사 직원의 인력·시간 소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현재 목표는 SW마에스트로 과정에서 최종 우승해 3000만원 자금을 지원받아 창업하는 것이다. "SW 분야 창업자가 되기 위해선 고등학교 때부터 일찍 뛰어들어 관련 분야를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왼쪽부터) 경기 이우고 윤형근‧박성점군, 인천 청라중 박민주양, 경북 상주고 배현승군.

◇'잊혀질 권리'와 'SNS'를 접목시킨 앱 '하루' 개발

박성범군과 윤형근군은 학교 수업에서 '잊혀질 권리'(개인이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자신과 관련된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배운 후, 지난 2014년 초 글이 24시간만 지속되는 SNS '하루'를 개발했다. SW 개발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는 두 사람은 책, 인터넷 등을 뒤져가며 6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박군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의 글이 너무 많이 올라와 복잡하다"며 "글이 24시간만 유지되면 덜 복잡하고, 글이 저절로 사라져 '잊혀질 권리'도 잘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둘은 중학교 때 학교 도서관 검색대에서 게임 하는 것을 막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SW에 처음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SNS '하루' 개발 덕분에 대학교 졸업 때까지 네이버에서 학비 전액을 지원받는다. 또 네이버의 SW 미래 인재 양성 교육기관인 'NHN NEXT'의 입학 기회도 주어졌다.

윤군은 "아침에 일어나 휴대전화의 메시지 등을 확인하는 것, 앱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것 등은 전부 SW 발달 덕분"이라며 "버스 안내 앱처럼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SW를 개발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군은 SW에 '디자인'과 '인문학'을 아우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스티브 잡스처럼 개발과 디자인을 아우르며 사용자에게 '감성'까지 전달할 수 있는 융합형 SW 인재가 되고 싶습니다."

◇똑 부러지는 의사가 되기 위해 SW 공부 시작

"제 꿈은 의사지만, 환자를 치료하기 이전에 SW 의료기구들을 잘 다루고 싶어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SW 교육 시범 선도학교'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박민주양은 몇 달 전만 해도 '기계치'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방과 후 학습으로 SW 수업을 받고 그에 대한 인식이 180도 달라졌다. "'레고 마인드 스톰ev3'라는 로봇을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했더니, 제 명령대로 로봇이 소리를 내고 표정도 짓더라고요.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던 가상세계가 실제로 나타나니 정말 신기했어요. 그때부터 SW에 푹 빠졌죠." 박양은 SW 수업에서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램 '스크래치'와 앱 발명 프로그램 '앱 인벤터'등을 이용해 자신의 첫 작품으로 '동물 키우는 앱'을 만들었다. 박양은 "SW 수업을 들으며 좋은 의사가 되려면 공부만 잘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다양한 의료기기를 사용해요. 이 기기 대부분은 SW를 통해 작동하고요. SW를 모르면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없다는뜻이죠. 저는 SW를 공부해 환자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는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