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성이 떠나갔다. 존 내시 교수와 부인 얼리샤 유족께 애도를 표한다."(영화배우 러셀 크로)

"고인의 비범한 업적은 게임이론에 영향을 받은 많은 수학자·경제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크리스토퍼 에이스그루버 프린스턴대 총장)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가운데 한 분을 잃었다."(압둘 칼람 전 인도 대통령)

23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199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시(86) 프린스턴대 교수 부부에 대한 추모가 줄을 잇고 있다. 내시와 부인 얼리샤(82)는 23일 오후 4시 30분쯤 미 뉴저지주 고속도로에서 타고 가던 택시가 가드레일과 다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러셀 크로가 주연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년)의 실제 모델인 내시의 삶은 영화보다 드라마틱했다. 1928년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는 21세 때 '비협력 게임'이란 논문으로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개인의 노력이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한다는 고전경제학의 거장 애덤 스미스에 반기를 든 것으로 1920년대 개발된 '게임이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3일 미국 뉴저지주(州)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천재 수학자 존 내시가 2011년 홍콩에서 열린 명예박사 수여식에 참석했던 모습. 내시는 1949년 스물한 살 나이로 주류 경제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론인 ‘내시 균형’을 발표해 학계 스타가 됐지만, 내시 자신은 1950년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30년간 투병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작은 사진은 2001년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의 존 내시 모습.

기존 게임이론은 한 사람이 이익을 얻으면 상대방이 그만큼 손해본다는 '제로섬(zero sum) 게임'에 기반했다. 하지만 내시 교수는 "상대방 전략에 따라 개인이 최선의 선택을 하다 보면 총합(總合)이 제로보다 커지거나 작아지는 새로운 균형 상태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으로 불리는 그의 주장은 나중에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입증됐고, 경제학뿐 아니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린스턴대 동료 교수였던 고(故) 해럴드 쿤 박사는 "20세기에 탁월한 경제학·수학 이론을 꼽을 때 내시 균형을 절대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 진학할 때 모교인 카네기멜런대 지도교수가 써준 추천서는 단 한 줄이었다. '이 학생은 천재다.' 박사과정 재학 당시 그는 당대 최고의 교수들도 쉽게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술술 풀어내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곡을 휘파람으로 불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장소에 관계없이 휘파람을 불어대고, 강의실에서 토론하다 갑자기 퇴장해 상대를 무안하게 하는 기행(奇行)으로도 유명했다.

(위 사진)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존 내시(왼쪽)와 부인 얼리샤(오른쪽).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만났던 부부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2001년 재결합했다. (아래 사진)배우 러셀 크로가 주인공 내시, 제니퍼 코넬리가 내시의 아내 얼리샤를 연기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여우조연·각색상을 받았다.

지적 능력은 뛰어났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불우한 천재의 삶은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졌다. 그는 MIT 교수로 재직하던 1957년 박사과정 학생이던 부인 얼리샤와 결혼했다. 하지만 얼리샤가 첫 아들을 임신한 1958년 과대망상과 자폐증 증상이 시작됐고,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 1963년 이혼했다. 얼리샤는 이혼을 했지만 남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자기 집에서 남편과 아들을 돌본 것이다. 내시 교수는 30여년 투병 끝에 1990년대 정신분열증에서 벗어났고, 노벨상위원회는 그가 정상이 됐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안겼다. 얼리샤는 이혼 38년 만인 2001년 내시 교수와 정식으로 재혼했다.

파란만장한 내시의 인생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작가 실비아 네이사가 1998년 쓴 '뷰티풀 마인드'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2001년 동명(同名)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작품·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병에서 회복된 후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던 내시 교수는 수학 편미분방정식 분야에서 획기적 기여를 한 공로로 지난 3월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벨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내시 부부는 노르웨이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한 후 귀국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존 로흐네스 아벨상위원회 위원장은 "아벨상 위원들이 내시 교수와 만나 무한한 기쁨을 누렸다"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