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종의 로망 같은 거 아닌가 싶다. 예쁜 데다 천재 소리까지 듣는 여자에 대한. 재벌 2세도, 연예인도, 정치인도 아닌 일반 기업인에게 이처럼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는 건 ‘로망’이 일정부분 작용한다고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엔씨소프트에 발 들인 7년간 한 번도 입을 떼지 않던 윤송이 사장이 근황을 알려왔다. 사내 인터뷰를 통해서다. 꽤 많은 얘기가 오갔다.
올해로 4년째다. 미국으로 건너가 '엔씨웨스트'(엔씨소프트의 북미법인)의 최고경영자를 맡은 지. 주로 미국에 있다 보니 지인들마저도 그의 소식을 궁금해한다. "살아 있냐", "출근 안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와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단다.
에서도 올봄, 한 차례 윤 사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었다. 워낙 들을 얘기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시기적으로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기도 했고, 논란이 된 '2015년 주총' 직후기도 해서다. 그는 미국 내 업무 등의 일정으로 정중히 거절했다. 실제로 윤 사장은 엔씨소프트 입사(2008) 이래 한 번도 매체와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이에 대해 그는 "그동안 인터뷰를 꼭 해야 할 계기가 없었고 엔씨웨스트 일로 많이 바빴다"고 전했다. 이유는 또 있다. '어색함'이다.
"제가 컨설팅으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는데, 컨설팅에서는 비밀 유지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처음부터 그렇게 훈련을 받아서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게 아직도 어색하더라고요."
그런 그가 지난 7월 초. 사내 인터뷰를 통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직접 미국 실리콘밸리를 다녀온 취재진은 "웃음이 많고 소탈했다"고 윤 사장의 인상을 전했다.
미국선 아직 시작단계, '고군분투'
살벌했다. 때는 올해 3월. 엔씨소프트의 주주총회 현장. 단상 위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서 있었다. 총회가 시작되자 날선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인인 윤송이 사장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무렵이었다. 개인투자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중 엔씨소프트의 주식을 1백억원어치 갖고 있다는 한 투자자는 "사장으로 임명될 만큼 (윤송이가) 회사에서 능력을 보여줬냐"고 지적했다. 질문이라기보다 따지는 쪽에 가까웠다.

이에 김 대표는 바로 화면에 자료를 띄웠다. 윤 사장이 엔씨소프트의 북미법인 대표로 임명되기 전과 이후의 경영상황을 보여주는 수치였다. 김 대표는 “윤 사장은 적자이던 북미법인에서 3년 연속 흑자를 냈다. 실리콘밸리 모바일센터 설립도 그의 작품”이라고 했다. 사장으로 승진할 충분한 경영능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엔씨웨스트는 한동안 고전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누적적자가 7백억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러다 윤 사장이 엔씨웨스트를 맡은(2012년 8월)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효율화, ‘길드워(guildwar)2’의 론칭 등으로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적자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었어요. CEO로 부임하기 전에 한국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봤는데, 적자가 계속 쌓이다 보니 결단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죠. 다양한 방식의 리더십을 여러 번 시도하기도 했는데, 한국과 미국과의 거리 때문에 모두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게 쉽지 않았어요.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엔씨웨스트가 10년 이상 쌓아온 것에 악영향을 주겠다 싶어서 결국 직접 와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어요. 조직정비도 해야 하고, 핵심인력도 관리해야 하는데 원격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해를 네 번 넘겼다. 한국에서 엔씨소프트는 우량기업이지만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스타트업’에 가깝단다. 이 때문에 그야말로 고군분투 중이다. 일도 일이지만 여러모로….
"한번은 외근 나가는데 운전 중 타이어 바람이 빠진 거예요. 근처 주유소에 가서 바람을 넣었는데, 처음 하는 것이다 보니 너무 많이 넣어서 균형이 안 맞는 거예요. 다시 바람을 빼야 하는데 빼는 방법을 몰라 처음엔 발로 차보기도 하고…."
결국 성공했다.
"'타이어 바람 빼는 법'을 검색해서 해냈어요. 그때 느낀 뿌듯함이란…."(웃음)
천재소녀? 그보단 호기심쟁이
'타이어 바람 넣기' 이전에도 그는 많은 것을 이뤄냈다. 최연소 여성임원, 천재소녀, 수석졸업 등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성공적인 삶을 대변한다.
윤 사장은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했다. 이후 카이스트(KAIST)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MIT)에서 컴퓨터신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매킨지&컴퍼니, 와이더댄닷컴, SK텔레콤 신사업개발 상무를 거쳐 엔씨소프트 사장이자 엔씨웨스트 CEO가 됐다.
그런데 이 중 '천재소녀'와 '수석졸업'은 사실이 아니란다.
"저 수석졸업 아니에요. 잘못 알려진 거예요. 이번 기회에 좀 바로잡아주세요. 그리고 '천재'라고 말씀해주시는 분 이제 없는데…. 천재도 아니고요, 공부를 아주 좋아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듣고 싶은 거나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빨리 배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넘치는 지적 호기심이 견인차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일화가 있다. 윤 사장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넘어져 다리에 피가 나는데, 그게 마를세라 집으로 뛰어와 현미경으로 관찰했단다. 남다른 건 사실인 것 같다.
이런 윤 사장이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건 SK텔레콤에 입사한 후였다. 2004년, 28세. 평사원과 같은 나이에 '상무'라는 직함을 달았고, '최연소 여성임원'이라는 타이틀에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이 어린 상무'의 활약은 컸다. 그중 하나가 당시 시도한 '1㎜서비스'다. 인공지능을 휴대전화에 접목한 건데, 휴대전화가 개인의 취향에 맞춰 뉴스·날씨·TV·영화·맛집 등을 찾아주는 시스템이었다.
결과는? 너무 앞서간 서비스라는 평가였다. 아이폰에선 2년 뒤에 이런 서비스를 내놨다. 윤 사장은 "피처폰에서 요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운영체계를 구현하고자 했으니 잘 안 돌아갔다. 안타깝다. 지난 10년여간 IT 발전의 크고 작은 변곡점에서 우리나라가 좋은 기회를 여러 번 놓친 것 같아서 아쉽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SK텔레콤 시절 여러모로 많은 걸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저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분이 많았어요. 내외한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여자 임원 방에 어떻게 들어가느냐며 제 사무실에 못 들어오는 분들도 계셨으니까요. 일반 사원과 같은 나이에 임원들과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양쪽의 입장을 두루 이해할 수 있었어요. 임원 입장에서 보면 회사의 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온 건지 알 수 있었고, 일반 사원 입장에서 보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어떤 오해가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죠. 커뮤니케이션에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시기였어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거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그는 게임으로 해소했다. 바로 엔씨소프트사의 '리니지'다.
엔씨소프트, 그리고 김택진과의 운명
한편 그 무렵, 김택진 대표는 모바일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게임업체와 모바일업체는 협업을 할 수밖에 없는 관계. 김 대표의 눈에 윤 사장이 들어왔다. 엔씨소프트의 '사외이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그땐 순전히 사업적 접근이었다. 평소 리니지 게임을 좋아하던 윤 사장은 김 대표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윤 사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 에 따르면, 둘의 관계는 사업상 만남이 지속되면서 깊어졌다.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다니며 골프를 치기도 했다. 사귄다는 소문이 돌았고, 한 언론사에서는 결혼설을 터뜨렸다. 2007년 6월이었다. 둘은 즉각 부인에 나섰다. 실제로 당시엔 결혼 생각까지는 없었다고.
윤 사장은 그때 SK텔레콤에 사표를 냈다. 결혼설이 회사에 타격을 줄까 걱정돼서다. 하지만 회사 측은 유보했다. 고통 속에 출퇴근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풍랑은 조금씩 잔잔해졌다. 그 무렵 주변에선 서서히 "(그러고 보니) 정말 잘 어울린다. 정말 결혼 생각이 없느냐"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혼설이 터진 지 5개월. 결국 둘은 경기도 한 전원주택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조용한 식을 올린 건, 이혼 경험이 있는 김택진 대표에 대한 윤 사장의 배려였다. 이후 윤송이는 SK텔레콤에 사표를 내고 김택진의 아내로 1여년간을 조용히 보냈다. 그러면서 임신과 출산을 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모습을 드러냈다. 엔씨소프트의 최고전략책임자로 새 둥지를 틀었다.
윤 사장은 게임회사에서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실제로 다른 제안들이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니 제가 계속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대학교 1학년 때 그림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동아리 방이 없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동아리 방을 얻긴 했는데 자물쇠 살 돈이 없는 거예요. 그때 어떤 회사에서 캐릭터 원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원화를 그려주고 그 대가로 자물쇠를 받았는데, 그 회사가 알고 보니 게임회사였어요."
어쩌면 운명이었다. 돌이켜보니 그가 배우고 익힌 기술과 학문이 모두 게임과 연관된 것이었다.
"제가 공부한 인공지능(AI)와 뇌 과학은 게임 사용자환경(UI)으로 직결되는 분야예요. 인공지능 캐릭터가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이게 바로 NPC(게임 안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인 셈이지요. 인공지능을 가진 카메라도 연구한 적이 있는데, 온라인 게임에서 카메라 컨트롤을 하잖아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논문도 썼고…. 제가 배우고 익힌 기술과 학문이 다 게임과 연관된 거였어요. 매니지먼트와 경영에 대한 경력도 그렇고 그런 시간들이 다 수렴돼서 결국 엔씨소프트에 오게 된 것 같아요. 참 신기했어요. 운명인가 싶기도 했고요."
일·공부보다 육아가 더 힘들어
슬하엔 두 아들을 뒀다. 아들 두 명은 현재 윤 사장과 미국에 있다. 첫째는 8세, 둘째는 6세다.
“아침 6시에 애들이랑 일어나서 다 같이 아침 먹고, 7시 30분까지 학교 데려다주고 8시 전에 출근해요. 종일 미팅하고 업무 보다가 미국 시간으로 오후 4시 30분이면 한국 시각은 오전 8시 30분이거든요. 그 시간이 한국 임원 분들 티미팅하는 시간이에요. 그때 저도 콘퍼런스콜로 참석해요. 그리고 저녁 6시 30분 정도에 퇴근해 집에 가서 애들 저녁 먹이고 8시 이전에는 재워요. 그 이후에 다시 이메일로 한국 업무를 보고, 12시쯤 자는 편이에요.”
기특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엄마가 일할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11시간 재우라고 하잖아요. 사실 해가 떨어지지도 않은 시간이라 암막 커튼으로 가리고 재우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숙제도 학교에서 다 하고 오라고 해요. 집에선 뭐 안 하게 하려고요.”(웃음)
아들 둘은 요즘 만화에 폭 빠져 있단다. 너무 만화만 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