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의미로 상영관수가 많은 영화관을 지칭)가 서울 곳곳에 생겨나면서 ‘영화의 메카’였던 충무로와 종로3가는 상징성이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그 면모는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에 붙어있는 역대 대종상 수상자 사진 전시물이 ‘영화의 메카’였던 과거의 흔적을 담고있다.

충무로에 대한극장이 있다면, 종로3가에는 서울극장과 피카디리가 상징적이다. 안타깝게도 단성사는 최근 경매 매물로 나와 자이로토마토라는 기업이 575억원에 낙찰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충무로 대한극장은 1956년에 개관했는데 설계를 담당한 곳이 미국의 ‘20세기폭스필름’이다. 이 영화관은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1년 8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재개장했다.

종로3가의 서울극장은 1978년 세기극장이 서울극장으로 상호를 바꾸면서 개관했다. 종로3가에는 국내 최초의 영화관인 단성사가 상징적인 곳이었지만 이 곳이 경매에 나오면서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 영화의 메카, 그 흔적은 여전히 짙게 남아

충무로가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용어가 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1960~1970년대에는 많은 수의 한국 영화 제작사가 충무로에 자리를 틀었다.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 서울극장, 국도극장, 명보극장, 스카라극장 등 당시 이름 있던 극장들은 충무로와 종로 일대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충무로와 종로구 종로3가의 위치도.

이 때문에 영화 제작사와 함께 일하는 현상소, 기획사, 인쇄소들도 이 곳에서 함께 자리를 잡기도 했다. 충무로에는 오토바이 가게들도 잇따라 들어섰는데, 이는 영화인들이 소품을 옮기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쇄소는 포스터와 홍보물을 제작하며 함께 커나갔다.

충무로의 이런 색깔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영화 산업이 점차 커지면서 많은 제작사들이 서울 강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와 함께 대형 영화 유통사가 멀티플렉스를 늘려갔고, 관람객 발길이 줄어든 충무로와 종로 일대 영화관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충무로는 국도극장 등의 재래식 영화관이 문을 닫았고, 대한극장도 결국 멀티플렉스로 리모델링 하게 됐다. 하지만 충무로는 그 상징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지하철 3·4호선이 지나는 충무로역에는 영상센터 오재미동이 있다. 영화문화공간으로서 도서관, 비디오 관람관, 영화 편집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충무로역에는 충무로 영상센터 오재미동이 자리잡고 있다. 오래된 영화 자료, 도서실 등이 있고 영상 편집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 종로3가는 관광객 방문 늘어…직장인들 방문 꾸준

종로3가 역시 충무로와 함께 한국 영화의 메카로 통하는 곳이다. 충무로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멀티플렉스가 생겨나면서 그 명성이 다소 약해졌다. 국내 최초 영화관인 단성사 건물이 결국 경매에 나온 것도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성사 건물은 3번의 유찰 끝에 575억원에 낙찰돼 새 주인을 찾았다.

종로3가역에 있는 피카디리 극장.

현재는 종로3가역 인근에 피카디리와 서울극장 정도가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극장에 영화관람을 온 직장인 변성수(48)씨는 “예전부터 영화를 보러 종로 3가 인근 극장을 자주 이용했던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퇴근 후에 예매하지 않고도 바로 표를 구할 수 있는 점도 있어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명동이나 광화문 일대로 도심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이 종로3가 극장가도 즐겨 찾기도 한다. 서울극장 인근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김모(38)씨는 “서울극장과 피카디리 등에서 관람객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행사도 마련하고 있어 그 덕을 좀 보고있다”며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때문에 손님이 줄었는데, 휴가철이 되면서 조금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영화의 메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종로 3가의 서울극장은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