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프랑스 음식 전문지 '르 셰프(Le Chef)'는 세계적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2~3개(별 3개가 최고 등급)를 받은 요리사 512명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뛰어난 요리사는 누구인가?" 역대 아카데미 주연상 수상자들에게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를 묻거나, 그래미상 수상 가수들에게 '최고로 노래 잘하는 가수'를 물어본 격이다.

문자 그대로 '최고 중 최고'로 뽑힌 요리사는 '요리계의 피카소'라는 피에르 가니에르(65)였다. 1위로 뽑힌 그의 뒤를 이어 프랑스의 고답적 조리법에 새바람을 몰고 왔던 폴 보퀴즈, 스페인의 후안 로카, 토마스 켈러, 알랭 뒤카스 등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최고' 반열에 올랐다.

가니에르는 2008년 10월 미슐랭 별 셋 요리사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롯데호텔에서 70억원을 투자해 서울 중구 소공동 본점에 그의 이름을 딴 식당을 유치했다. 파리, 런던, 도쿄, 라스베이거스, 두바이, 모스크바, 홍콩 등에 레스토랑 12곳을 운영하는 가니에르는 1년에 두 번씩 서울에 들러 레스토랑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조리 기법을 전수한다. 그가 머무르는 일주일간은 발 빠르게 예약해둔 고객들로 연일 만석이다.

방한 중인 가니에르를 지난 24일 그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최고의 요리사'는 "아직도 가끔 내가 요리를 좋아하긴 하는지를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고 했다.

피에르 가니에르

아직도 자문한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가를

점심 시작을 한 시간 앞둔 오전 11시, 180㎝ 장신(長身)의 가니에르는 청바지에 흰 조리복을 입고 성큼성큼 식당으로 들어섰다. 대가(大家)에게 최고가 된 비결을 먼저 물었다. 부드럽게 웃던 그는 "남들이 나를 최고라고 해도, 내가 나를 최고라고 하는 순간 끝"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보기에는 최고가 아니라는 뜻인가.

"최고라고 평가해준 것은 계속 더 노력하라는 뜻이다. 장점과 가치를 인정받는 데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주방의 철학자라고들 하는데, 당신의 음식 철학은 무엇인가.

"정직한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는 컴퓨터로 하는 게 아니라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다. 재료 앞에 정직하고 함께 일하는 팀에게 정직하며 손님에게 정직해야 한다. 가식 없이 진정한 자신만이 주방에서 돌아다녀야 한다."

―미슐랭가이드에서 일찌감치 별 셋을 받았다. 미슐랭의 별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별은 나의 요리를 돌아보게 하는 채찍과 같다. 여러 레스토랑을 총괄 지휘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틈이 생긴다. 제3자의 날카로운 눈이 있어야 긴장과 경쟁이 있지 않겠나. 간혹 별 개수가 논란이 되기도 하는데, 요리사나 식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손님을 위해서 요리사가 더 노력하도록 반짝이는 별로 존재한다면 가치가 있다고 본다."

―별을 잃을까 봐 자살한 요리사도 있다(2003년 프랑스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는 별 둘로 강등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자살했다). 별이 그렇게 중요한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걸 두고 걱정하지는 않는다. 걱정은 나약함의 증거다. 머리로는 고민을 하더라도 (남들에게 보이는) 손은 떨지 않아야 한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만난 피에르 가니에르는“요리는 영원한 탐구”라며“단 한 번도 내 요리에 만족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요리가 아니라 요리를 먹고 난 손님들의 가슴에 남는 즐거운 추억이다.

모태(母胎) 직업…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가니에르는 프랑스의 루아르 지방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둘 다 요리사였다. 네 자녀 중 장남인 그는 가업(家業)을 이어받아 요리사가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는 점에서, 그는 "요리는 운명"이라고 했다.

생테티엔(Saint Etienne)에 자신의 첫 레스토랑을 연 것은 서른한 살 때인 1981년. 이듬해 바로 미슐랭 별 하나를 땄다. 1993년 드디어 별 셋. 40대 중반에 정상에 선 듯했으나, 3년 만에 파산했다. 남자 나이 마흔여섯, 전 재산인 레스토랑을 잃은 그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모든 것을 잃었구나 싶었으나 한 가지 남은 것이 있었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확신이었다.

"외부 평가는 좋았는데 워낙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이 없었다. 그래도 내 음식을 믿었고, 내 음식을 믿어준 사람들을 믿었다."

파리로 간 그는 6개월 만에 다시 레스토랑을 얻었다. 별 셋을 다시 따는 데에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중년에 겪은 파산 위기를 어떻게 넘겼나.

"요리 이외에 다른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요리로 망해도 요리로 돌파해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믿고 받아들였다."

―그때의 위기가 이후 요리에 영향을 끼쳤나.

"내가 아무리 옳고 잘한다고 해도 그 외 조건이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험은 나의 시야를 크게 넓혀줬다. 돌아보면 40대 중반의 처절한 실패가 오늘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요리사가 된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나.

"애초부터 내가 선택해서 요리사가 된 것이 아니었으니 후회는 없다. 그저 날 때부터 요리사로 태어났다. 굴레이지만, 유일무이한 길이라는 점에서 긍지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요리를 진정으로 좋아하게 됐나.

"내가 음식을 만들지만, 식탁 위의 결과물을 보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놓은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요리하는 순간에는 내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접시 위로 옮겨지는 걸 즐긴다. 미슐랭 별 셋을 받았어도, 아직도 가끔 나는 '내가 정말 요리를 좋아하긴 하는가?' 하고 자문(自問)한다."

미슐랭 별은 채찍… 손님 위해 요리사에게 내리쳐

가니에르는 미식가도 경탄하게 만드는 새로움으로 콧대 높은 파리지앵들을 사로잡았다. 맛, 향, 온도에 따른 식감 변화, 모양, 색, 닮음새, 분위기 등이 예상을 벗어나는 경탄의 연속이다.

일간지 르 피가로는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식사를 하고 있자니, 해변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고래가 된 기분이었다"고 쓰기도 했다. 그만큼 예측을 불허하는 메뉴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초콜릿 디저트를 먹는데, 알고 보니 장어가 들어 있다면? 그 맛이 어떤 디저트보다도 달콤하다면? 아이디어에 놀라고 조리법에 호기심이 부풀어오른다. 그래서 그의 파리 레스토랑은 1인 저녁 식사가 70만원에 가까운데도 몇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가니에르는 "요리는 영원한 탐구"라며 "한순간도 요리를 머리에서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식사가 손님의 식탁으로 옮겨지기 직전까지 조리법을 고민하다 마지막에 확 바꿔버리기도 한다. 재즈 트럼펫 주자 쳇 베이커, 화가 잭슨 폴록,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글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한숨을 쉬며 "불행하게도 그렇다, 불행하게도"라고 했다.

―예술가인 것이 왜 불행한가?

"예술가는 절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평생 피곤하다. 불행한 거지."

―자신이 만든 음식에 만족한 적이 없나?

"한 번도 없다. 요리는 결과물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는 기쁨 때문에 하는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남기고 작가는 책을 남긴다. 음식은 남는 게 없다. 허무하지 않은가.

"어젯밤에 고객들에게 문자를 받았다. 런던의 한 고객은 '잘 먹었어요, 멋진 밤이었습니다'라고 보냈고 '매우 즐거웠다'는 문자도 왔다. 요리는 사라져도 추억이 남지 않는가. 순간의 감정이 빚어낸 둘도 없는 작품이다."

―다른 요리사의 요리를 먹고 질투해본 적이 있나.

"'이건 정말 훌륭한걸'이라고 감탄이 나올 때가 있었다. 제럴드 파세다의 별 셋 레스토랑 '르 프티 니스'에서 맛본 토마토와 성게 요리, 1983년 먹어본 미셸 호와스의 요리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해서 좋았다."

―정상의 요리사는 대부분 남자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요리사의 첫째 조건 중 하나가 체력이다. 하루 16시간 이상 서서 일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체력적으로 남자들이 더 강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여성 요리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에서는 요즘 TV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요리사가 인기다. 실제와 달리 과장된 모습으로 요리를 오락화한다고 비판받기도 하는데, 어떻게 보나.

"내가 요리를 시작하던 시절만 해도 솔직히 직업을 밝히기 힘들 만큼 천대받았다. 지금은 뜨는 직업이 됐는데, 대중매체 속 스타 요리사가 공헌했다면 칭찬해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리사라는 직업은 그렇게 멋지지 않고 누추하다는 점은 알아야 한다."

―만약 출연 요청을 받는다면 나설 생각이 있나.

"TV 프로그램은 게임이고 쇼다. 나와는 상관없다."

―죽기 직전 한 가 지 음식을 먹는다면 무엇을 먹고 싶은가.

"당장 오늘이나 내일 죽는다고 하면 뭘 먹을지를 생각할 것 같지 않다. 그 하루를 어떻게 충실히 살지를 고민해야겠지."

인터뷰 도중 그의 저서에 사인을 받으려는 손님들이 책 두 권을 전해왔다. 주방에서는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요리가 대기 중이었다. 자리를 뜨기 전 그는 "나는 나, 그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프로 요리사로 살아온 지 40년쯤 되는데, 그간 나의 요리도 피카소의 청색 시대나 장미 시대처럼 변화가 있고 구분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최고로 뽑히든 아니든, 시기가 변하든 아니든, 나는 피에르 가니에르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