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해온 미국 대학 경제학과 경쟁구도가 스탠퍼드의 급성장으로 흔들릴 조짐이 보이고 있다.

경제학 분야에서 스탠퍼드는 하버드, MIT, 프린스턴 그리고 시카고대 다음으로 높게 평가 받아왔다. 예일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자넷 옐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 의장을 제외하면 그동안 미국 백악관의 경제 자문위원회를 이끌었던 10명의 의장들은 모두 하버드나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 알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캠퍼스

세계 경제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은 모두 MIT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스탠퍼드가 경제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이 같은 상황이 머지 않은 미래에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탠퍼드는 지난 4년동안 선임교수(senior faculty)의 숫자를 25% 가량 늘렸고, 수백만달러인 연봉을 받는 명망 높은 학자 11명도 영입했다. 10일 뉴욕타임스(NYT)는 스탠퍼드가 이 같은 노력을 통해 향후 경제학 연구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IMF와 연준 등 경제관련 주요 정책기구 수장에 스탠퍼드 출신 들이 이름을 올릴 날이 올 것으로 내다봤다.

스탠퍼드는 최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 교수를 하버드대에서 영입했고, 40세 미만의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John Bates Clark Medal) 수상자 11명 중 4명도 데려왔다. 이 중 라즈 체티(Raj Chetty)는 하버드대에서, 매튜 겐츠코프(Matthew Gentzkow)는 시카고대에서 각각 옮겨왔다.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경제학 교수는 “세상의 미래가 만들어 지는 곳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면서 실리콘밸리에 인접한 스탠포드대에서는 (하버드와 MIT가 있는) “케임브리지나 보스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겐츠코프 교수도 “시카고 대학도 좋았지만 스탠퍼드에서는 뭔가를 완성해 가는 짜릿함이 있는 것 같다”면서 “스탠퍼드는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을 경제학에 투자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NYT는 스탠퍼드는 경제학자들에게 하버드나 MIT와 비슷한 수준의 보수를 지급하거나 더 많은 보수를 제공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최근 경제학의 흐름은 이론 중심의 거시경제학에서 경험에 바탕을 둔 미시경제학으로의 전환이 두드러진다. 이 과정에서 실험을 통해 현실적인 경제적 현상을 분석하는 연구 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다.

스탠퍼드가 사회학과 경제학, 혹은 공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교수들을 영입하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연구를 위해서는 사회학이나 컴퓨터 공학 등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최근 스탠퍼드와 계약을 맺은 학자들은 스탠퍼드가 넉넉한 예산과 넓은 실험실 공간, 연구 지원 등 관련 연구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명망있는 경제학 교수들이스탠퍼드로 자리를 옮긴 것에는 캘리포니아의 날씨도 한 몫 했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의 더글라스 번하임 학장은 “보스턴에서 때로 2미터가 넘게 눈이 쌓이는 등 겨울 날씨가 좋지 않은 것도 스탠퍼드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버드와 MIT가 쉽사리 최고의 자리를 스탠퍼드에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이비드 레입슨 하버드대 경제학과장은 "스탠퍼드는 하버드 교수 영입에 관심이 많은데 그건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경쟁력이 매우 높다는 증거"라며 자존심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