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1월 16일 고종이 머물던 경복궁 내의 건청궁 한쪽에서 “아이고, 아이고...” 통곡이 흘러나왔다. 임금이 전화 송화기에 입을 대고 곡을 하는 소리였다. 궁궐에 들어와 어머니로 모신 신정왕후의 서거 이듬해, 고종은 18㎞ 떨어진 경기도 구리의 동구릉으로 매일 행차해 무덤 앞에서 곡을 하는 대신 임시 전화선을 놓고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며 3년상을 치렀다.

김재현 KT경제경영연구소 지식생태계팀장은 “고종이 당시의 법도대로 묘소에서 삼년상을 치르지 않고, 궁내에 머무르며 전화로 곡을 한 것이 공식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우리 역사 최초의 전화 통화 사례”라고 말했다.

130년 맞은 한국의 통신 산업

우리나라 근대 통신의 역사는 고종의 첫 전화 통화 기록보다 5년여 더 이른 1885년 9월 28일 시작됐다. 이날 전신(電信)을 관할하는 한성전보총국이 지금의 서울 세종로 80-1번지에서 개국한 것이 출발이다. KT는 이를 기념해 21일 옛 한성정보총국 터 바로 맞은편에 있는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대한민국 통신 13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국내 최초로 설치된 전화기와 동일한 모델의 자석식 전화기 등 구형 전화기 60여점과 모스 전신기, 전신용 타자기, 최초의 차량용 무선 전화기 등 모두 200여점의 유물을 모은 상설 전시관도 열었다. 한성전보총국에서 시작된 근대 통신은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산하 통신국, 경성우편국, 경성무선전신국을 거쳐 해방 이후 정부 수립과 함께 체신부, 한국전기통신공사, KT로 역사를 이어 왔다.

고종의 전화통화 모습(복원도). (KT제공)
구한말 전보사관 양성소. (KT제공)
1950년대 전화 교환수. (KT제공)
1950년대 서울 중앙전화국. (KT제공)
1960년대 전화상. (KT제공)

한국 통신산업의 태동기 조선에는 통신선(線)이라고 해봐야 몇 개 되지 않았다. 첫 전신은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것이었고, 이어 서울~부산, 서울~원산선이었다. 각각 청과 일본, 러시아와 연락을 주고받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열강에 국익(國益)이 침탈되던 역사가 우리 통신사(史)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 것이다.

“5세대 통신을 타고 해외로 뻗어 갈 것”

1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통신산업 위상은 초창기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날 기념식에서 황창규 KT 회장은 “대한민국 통신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현재는 ICT (정보통신기술) 강국으로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전국엔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위성통신까지 합쳐 1억784만개의 통신 회선이 깔렸고, 전국 어디서든 3~4분이면 고화질 영화를 뚝딱 내려받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평균 속도 초당 22메가비트)을 가진 나라가 됐다. 무선인터넷 가입률 세계 4위, LTE(4세대 이동통신) 가입률 1위의 명실상부한 ‘통신 강국(强國)’으로 변모했다. 이 통신 기술을 이용해 이제는 해외로 뻗어 가고 있다.

이날 전시장이 마련된 올레스퀘어 한쪽에는 서울에서 6700㎞ 이상 떨어진 핀란드 국가기술단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사하라 호텔 등의 전력·난방 사용 현황을 원격으로 관제하는 모습이 시연(試演)됐다. 전시장 중앙의 대형 모니터에는 핀란드의 전력·스팀관(管)에 설치된 센서에서 시시각각으로 전해오는 온도와 습도 에너지 사용량이 수시로 변하며 계기판에 표시됐다.

21일 서울 세종로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대한민국 통신 130년 특별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다이얼이 없이 수화기를 들기만 하면 신호가 보내지는 ‘공전식 전화기’ 등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왼쪽부터 황창규 KT 회장, 권은희 새누리당 국회의원, 홍문종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김연정 객원기자)

각종 센서와 통신망을 이용한 에너지 관제 기술은 차세대 통신 기술인 5세대(5G)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핵심 사업 중 하나다. KT는 지난해 1월 황창규 회장 취임 직후 ‘스마트 에너지’ ‘통합 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 5개 분야를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 인터넷보다 10배 빠른 ‘기가(Giga)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5세대 통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5G 관련 기술을 선보이며 주도권을 잡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은 이를 앞당겨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시범 기술을 선보일 계획이다. 황 회장은 “2018년 본격 시범 서비스를 선보일 5G는 단순히 속도의 진화(進化)만 추구했던 과거와 달리 용량과 연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어 우리의 산업과 생활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ICT 융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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