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데 외모는 얼마나 중요할까? 정신과 전문의인 선배에게 꽤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관계를 '시작'하는 능력과 그것을 '유지'하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것이란 말이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오드리 토투는 정확히 시작되는 관계에 최적화된 얼굴이다. 성형 때문에 망가지고 있는 멕 라이언의 얼굴을 보는 괴로움에 비하면 여전히 귀여운 오드리 토투의 얼굴을 보는 일은 차라리 위안이다. '아멜리에'가 나온 지 14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선 엉뚱한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의 성지인 파리가 배경인 영화 '시작은 키스!'는 엉뚱한 키스로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밝고 사랑스러울 것이라 예상했던 이 영화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3년 동안 연애 한번 안 한 여자'가 주인공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어두운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오드리 토투는 여전히 예쁘다. 그녀를 채용한 스웨덴계 대기업의 파리 지부 사장(당연히 유부남!)이 그녀를 3년 내내 짝사랑했을 정도다.

프랑스 파리 센강 위로 배들이 지나가고 있다. 다비드·스테판 포앙키노스 형제가 연출한 영화 ‘시작은 키스!’는 직장 상사의 구애도 본척만척하는 예쁘고 잘난 파리 여자가 직급도 낮고 못생긴 스웨덴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를 담았다.

문제는 첫눈에 반한 남편 이외에 그 어떤 남자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일 중독자로 살아온 '철벽녀'에게 남자가 생겼는데, 그 남자가 누구도 아닌 그녀의 부하 직원이라는 사실이다. 여자 상사가 파견 온 자신의 부하 직원을 좋아하는 것도 평범치 않은 일인데 거기에 이 남자, 머리숱이 휑한 대머리에 배 나오고 너무 못생겼다.

게다가 그는 프랑스 사람도 아니고 스웨덴 사람이다. "이러다 감기 걸릴 텐데?" 하고 나탈리를 걱정하는 이 남자 마르쿠스는 파리의 추위 정도는 아프리카 날씨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스웨덴 남자인 것이다. 똑똑하고 예쁘고 직급도 높은 여자가 왜 이런 남자를 사귈까? 사람들의 궁금증이 증폭될 즈음, 사장까지 그들의 연애 사실을 알고 문제의 이 남자, 마르쿠스를 불러낸다. 사장의 결론은 이런 것이다.

"젠장, 성격도 좋은데 시(詩)까지 쓰는군!"

고주망태로 취한 사장을 부축해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 태울 때, 사장이 마르쿠스에게 내 뱉는 말 역시 이런 맥락이다.

"날 보내고 그녀를 만나러 가려는 거지? 젠장! 예의까지 바르잖아!!"

잘생긴 남자가 못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는 참 흔하다. 그 반대는 무척 희귀해서, 한창 잘나가던 김혜수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던 시절의 유해진을 사귈 때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왜?"를 외쳤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가 왜 그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 선배는 지나가는 말처럼 남자가 잘생기면 '얼굴값'을 하지만 못생기면 '꼴값'을 하기 때문에 잘생긴 남자를 만나는 게 로또란 말을 후배들에게 남기기도 했지만, 어떤 여자에게 실제 남자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남자들에게는 외모에서 찾을 수 없는 굉장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유머'도 그 매력 요소 중 하나다. 나는 기생충학자인 서민 교수의 책을 좋아하는데, 그 역시 못생긴 외모를 유머로 승화시킨 케이스(본인 스스로 그렇게 여러 번 주장했다). 개그맨의 아내에 미인이 많다는 속설 또한 그런 맥락일 거다. 밤을 함께 보낸 나탈리와 마르쿠스가 아침에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들은 그냥 소파에서 잠만 잔다! 마르쿠스는 여자를 '기다려주는' 남자인 것이다). 꽤 로맨틱해 보이는 이 장면에서 나탈리는 접시에 놓인 그의 식빵을 집어들고 대신 버터를 바른다.

"실력이 좋네요. 난 항상 식빵이 부서지는데."

"오래돼서 그런 거예요. 유통기한 지났을 거예요."

"이런! 고마워요. 날 위해서 이렇게 오래 남겨두다니…."

최근에 문신에 대한 인상적인 얘길 읽었다. 흉부외과 의사인 한 남자가 칠십이 훌쩍 넘은 노인의 문신을 바라보며 쓴 단상이었다. 노인의 몸에 난 5㎝ 넘는 하트 모양 문신은 아마 지난 사랑에 대한 굳은 다짐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몸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문신의 푸른 물과 상처들 역시 바로 그 문신을 지우기 위한 지난 사랑의 흔적들이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노인이 문신을 지우기 위해 여기저기 문신술사들을 알아보는 모습, 최후엔 담뱃불로 그것을 지져 없애려고 애쓰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문신의 흔적을 가진 채로도 그를 받아들여주는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하는 모습. 심장이 고장 난 아픈 노인의 문신에서 그의 평생에 걸친 사랑을 읽는 의사의 눈빛이 따뜻해서 그만, 나도 모르게 울컥해져 버렸다.

나탈리의 몸에 남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신은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목초지 같았던 그녀의 땅을 사막처럼 황폐화시킨 것 역시 남편의 죽음이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게 아니라, 하나 같은 둘이었다가 예고 없이 버려진 사람. 그런 사람이 가지게 되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또다시 혼자 남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탈리가 마르쿠스에게 하는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당신의 가장 좋은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신은 나를 안심시켜요."

결국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두려움에 떠는 내 안의 아이를 끌어안아주는 것이기에, 나탈리의 옛집에서 그녀의 마음속 어린아이에게 다가가 천천히 말을 건네는 이 남자의 목소리에서 나는 사랑을 느꼈다. 그는 지우고 지우다가 지쳐 결국 흔적이 남아 버린 문신까지 사랑해주는 남자인 것이다.

이 영화는 다비드 포앙키노스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원작자가 친형과 함께 연출을 맡으며 유명해졌다. 할리우드에서 일하기도 했던 유명한 캐스팅 디렉터 출신의 형 스테판 포앙키노스의 선택 덕에 빛난다. 영화만을 두고 보자면 오드리 토투보다, 프랑스어 대사가 가능한 스웨덴 배우가 없다는 이유로 낙점된 마르쿠스 역의 프랑수아 다미앙의 연기가 마음에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시작은 키스!―다비드 포앙키노스·스테판 포앙키노스 형제가 연출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