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정상회의가 1일 서울에서 3년 반 만에 개최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는 이날 공동선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토록 노력하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3국 정상회의도 정례적으로 열기로 했다.

과거사·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어온 3국이 정례적 정상회담 개최 등 대화 창구를 복원키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중·일 FTA, RCEP를 통해 동북아 경제 동반자로 가는 길을 제시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과거사와 동북아 정세 안정 등 3국 간 핵심 현안에 대해선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민감한 갈등 현안을 푸는 데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번 3국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과제를 안게 됐다. 세 정상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과거사 해결 방안은 없었다. 리커창 총리는 역사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아베 총리와 정면으로 충돌하진 않았다. 중국은 3국 협력을 통해 실리를 챙기면서 과거사 문제는 장기전으로 가져가겠다는 의도인 듯하다. 한·일 간에도 과거사 문제를 단번에 끝장내려 하기보다는 유연하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북핵(北核) 문제에서 중국의 미묘한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북핵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한·중 정상회담 발표문에서 '북한 비핵화'를 '한반도 평화·안정'이라는 문구(文句) 뒤로 돌렸다. 2013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최근까지 비핵화를 최우선 항목으로 올려 왔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달 류윈산 상무위원의 방북 이후 북한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면서 북핵 문제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북핵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했지만 중국이 미온적으로 나오면 북핵 해결은 힘들어진다. 따라서 북핵에 대한 중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해양주권 문제 또한 녹록지 않은 과제가 될 수 있다. 이날 일·중 정상회담에선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문제가 논란이 됐다.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간 해양 경계 획정(劃定)' 회담을 재개하자고 요구했다. 남·동중국해에서 시작된 해양주권 갈등이 서해에서 한·중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서해 EEZ에 대한 한·중의 견해차는 상당하다. 미국과 중국은 남·동중국해에서 갈등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정면충돌은 피하고 있다. 일본은 올 들어 자위대 해외 파병 허용 등을 통해 미국과 동맹관계를 한층 강화했다. 경기가 하강하고 있는 중국은 과거사 문제보다 경제적 실리(實利)를 중시하려는 분위기다. 동북아를 둘러싼 미·중·일의 전략 변화가 어느 때보다 뚜렷한 상황에서 우리의 외교·안보 전략을 새롭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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