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인상파가 빛을 찾아내 캔버스에 옮겼다면, 빛을 작품에 통과시킨 김인중은 '21세기 인상파' 화가다."

프랑스의 저명 예술사학자 드니 쿠탄(68)이 재불(在佛)화가 김인중(75) 신부를 다룬 비평서 '김인중―획을 통해(selon les ecritures)'에서 김 신부를 "20세기 현대미술 대표 작가인 세잔, 마티스, 피카소를 잇는 거장"이라고 극찬했다. 드니 쿠탄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그라네 미술관' 관장(1980~2008년)을 거쳐 현재 폴 세잔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세계적인 세잔 전문가로 2011년 룩셈부르크박물관에서 열린 '세잔과 파리'전 등 세잔 관련 전시를 수차례 기획했다. 그가 김 신부를 단독으로 다룬 비평서를 낸 것 자체가 프랑스 화단에선 화제다.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제단이 있는 파리 외곽 노장쉬르마른시 사립학교 경당(왼쪽)과 마티스의 작품으로 도배된 로사리오 성당(오른쪽).

김 신부는 천주교 도미니칸회(會) 소속의 '화가 신부'다. 1966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스위스 유학 도중 사제가 됐다. 1975년부터 파리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40년 동안 스테인드글라스, 회화, 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해왔다. 특히 성경 내용을 옮기는 전통적 양식을 넘어 동양화의 선을 스테인드글라스에 결합한 양식을 선보여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색을 해방한 화가'라는 찬사를 얻었다.

드니 쿠탄은 김 신부의 작품 세계를 세 부문으로 나누고 회화에선 인상파 세잔을, 스테인드글라스에선 야수파 마티스를, 도자에선 입체파 피카소를 계승한다고 했다. 일례로 마티스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제단, 십자가, 스테인드글라스까지 만든 프랑스 남동부 방스의 로사리오 성당과 김 신부가 제단과 유리창 전부를 만든 파리 외곽 노장쉬르마른시(市)의 한 사립학교 경당 사진을 나란히 비교한다. 두 화가 모두 장식을 걷어내고 간결한 색채와 선만으로 성령을 시적으로 표현했음을 보여준다.

세잔이 조형성을 실험했던 무대인 생트 빅투아르 산, 비베무스 채석장에 김 신부가 직접 가서 돌산 아래 회화 작품을 펴놓고 연구하는 과정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자연과의 조응(照應)'이라는 두 사람의 예술적 공통분모를 말한다.

드니 쿠탄이 집필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2년 전 빈센트 반 고흐가 생애 마지막 70여일을 보낸 곳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열렸던 김인중의 전시회를 보고 나서였다. 고흐 탄생 160주년 기념전으로 열린 전시에서 김 신부는 가로·세로 20㎝의 작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 160점을 전시했다.

김 신부는 전화 통화에서 "거장들과 대등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나는 그저 그들과 다음 세대의 화가를 잇는 작은 다리일 뿐"이라고 했다. 내년쯤 서울 수원교구의 한 신축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넣는다는 계획도 밝혔다. 드니 쿠탄은 현재 프랑스에서 '세잔·김인중 2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 순회 전시도 추진 중이다. 김 신부는 "여러 정치적 문제로 혼란한 고국에 내 빛의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