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
카카오 3800만, KT는 3000만 고객 활용… 선진국보다는 20년 늦어

우선 은행 지점에 가지 않고 인터넷·모바일 등 온라인(on-line)만으로 예금·대출 등 모든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된다. 기존 은행 고객들은 계좌 개설 등을 위해 은행 지점을 찾아야 했지만, 화상 통화 등으로 본인 확인을 받고 계좌를 열 수 있다. 또 인터넷은행은 기존 은행 비용의 20~30%를 차지하는 인건비와 지점 운용비 등을 줄여 예금 금리는 높이고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어 고객들의 혜택이 커지고, 현금 대신 인터넷공간에서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이자를 받을 수 있어 소비자의 선택폭이 넓어질 전망이다.

◇기존 인터넷 뱅킹과 뭐가 다른가

시중은행들은 1990년대 말부터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뱅킹과 인터넷은행의 가장 큰 차이는 인터넷 뱅킹은 지점 등 기존 조직을 그대로 두고 인터넷 서비스를 덧입힌 것이라고 하면, 인터넷은행은 시작부터 모든 업무를 인터넷으로 한다는 것이다. 계좌를 틀 때도 가입 서류를 인터넷으로 제출하고 화상 통화, 지문·얼굴 인식, 공인인증서 인증 등으로 본인 확인을 받는다.

또 인터넷은행은 KT, 카카오 같은 통신·IT 기업이 주도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이자를 현금이 아닌 모바일 데이터, 쇼핑 포인트 등 디지털 형태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인터넷 뱅킹과 다른 점이다. 대출 심사 때는 기존 은행들이 쓰던 신용등급 외에 다양한 '빅데이터(방대한 양의 자료)' 정보를 활용한다. 대출 신청자의 쇼핑 내용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용 습관, 인터넷 검색 내용 등도 이용한다는 것이다. 대출자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고객별 대출 금리 차별화가 쉽게 이뤄진다.

◇차별화된 서비스

K뱅크·카카오뱅크는 현금 외에 인터넷 공간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디지털 이자'를 제공할 예정이다. KT 주도의 K뱅크는 현금 이자 외에 엑소·AOA 등 인기 가수의 최신곡 다운로드권이나 베테랑·암살 등 IPTV(인터넷TV) 최신 영화 시청권 등을 이자로 지급할 계획이다. 카카오뱅크 고객들은 현금 이자 대신 받은 포인트로 오픈마켓(지마켓·옥션), 도서(예스24), 게임(넷마블), 음원(로엔)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을 송금 수단, 금융상담 창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인터넷은행들은 중급(中級) 신용도를 가진 2000여만명을 대상으로 연 10%대 중(中)금리 대출을 제공함으로써, 기존 2금융권 이용자들의 대출이자 부담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IT 기반 인터넷은행들은 우량 대출 고객을 선별하는 데 통신비 납부 이력, 신용카드 이용실적, 온라인 쇼핑몰 구매이력·회원등급 등 수십억 건의 '빅데이터'를 활용한다.

개인 맞춤형 추천 서비스도 인터넷은행의 강점이다. 기존에는 수십억원대 자산가들만 받던 'VIP급 자산 관리 서비스'를 컴퓨터 분석으로 일반 고객 누구에게나 제공한다.

◇장밋빛 전망만은 아니야

인터넷은행이 설립되면 고객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사업 초기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구경회 현대증권 연구원은 "인터넷은행은 신규 은행이라 초기에 예금을 빨리 늘리기 어려운데 비용을 쓰다 보면 최소 4년간은 적자 영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임호 한양대 교수는 "연 10%대 중금리 대출의 대상을 찾다 보면 인건비가 많이 들 것"이라며 "신생 은행이 얼마나 이런 시장을 잘 개척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은 기본적으로 저비용 구조여서 서비스를 차별화해서 고객을 빠르게 늘린다면 순항할 수도 있다.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는 국내 인터넷은행의 매출 대비 비용이 35% 선으로, 시중은행(55~60%)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영서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3800만명의 메신저 고객이 있는 카카오 등은 쉽게 고객을 확보하면서도 일반 은행에 비해 판매관리비를 훨씬 아낄 수 있어 손익분기점을 쉽게 넘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 支店의 종말… '사이버 금융시대' 본격화]

은행 경쟁력 키울 '메기' 역할 기대

정부의 인터넷은행 설립 허용은 금융 개혁의 일환이다.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해 은행산업을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게 하고, 국제경쟁력을 키워 해외 진출도 촉진하자는 의도다. 정부는 카카오뱅크와 K뱅크가 혁신적인 서비스를 앞세워 낙후한 금융산업에서 '메기'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우선 인터넷은행이 인건비, 지점 운영비 등을 획기적으로 줄여 기존 은행 시장을 잠식하면 시중은행들도 압박감을 느끼며 인력, 조직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시중은행들의 경우 이익 대비 판매관리비(인건비·임대료·마케팅비 등) 비중이 55~60%에 달한다. 인터넷은행의 경우 이 비율이 30~35% 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의 인사 담당 부행장은 "인력·조직 개편은 어두운 은행산업의 미래를 생각할 때 필수적인 과제지만, 노조의 반대로 추진하기는 어려웠다"며 "인터넷은행 도입으로 효율 경영의 성과가 나타나면 은행 조직 개편이 탄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은행 출범은 은행권 전체의 고객심사 및 대출 관행을 혁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은행은 신용대출을 신청한 고객이 별도 담보가 없거나, 소득이 부족하면 대출을 거절하거나 대출금리에 고금리를 적용해 왔다. 그러나 인터넷은행이 고객의 SNS 활동 내용, 온라인 상품구매 이력, 평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객 신용 등급을 치밀하게 책정하고, 이렇게 책정된 고객별 신용등급에 맞춰 대출금을 늘려주거나, 대출금리를 내려주면 시중은행들은 고객을 뺏길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면 기존 은행들도 인터넷은행 모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또 인터넷은행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면 4000여 개에 달하는 은행권 지점망의 통폐합을 촉진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뱅크3.0'의 저자 브렛 킹은 "인터넷 금융의 발전으로 기존 은행들이 운영한 지점의 70~80%가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인터넷은행이 도입된 미국·유럽·일본의 경우 인터넷은행들이 전체 은행권 자산의 1~3%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총자산 1841조원에 달하는 국내 대형 은행들이 재빨리 변화하면 자금 동원에 한계가 있는 인터넷은행들이 힘겨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행의 혁신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신영 기자

해외에선 예금금리 최대 8배… '60초 대출'도

선진국의 인터넷은행

인터넷은행이 국내에선 29일 첫발을 뗀 것과 달리 해외에선 이미 20년 전부터 핀테크(fintech·금융과 정보기술이 결합된 신산업)의 한 분야로 도입됐다. 사업 초기엔 수익모델 부재(不在)와 과도한 마케팅 비용 때문에 영업을 중단하거나 다른 금융회사에 인수·합병된 곳들이 많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인터넷은행들은 낮은 수수료와 높은 이율, 편의성을 바탕으로 특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개인 자금을 흡수해 나가고 있다.

일본 인터넷은행들은 지난 2000년 설립 이후 연평균 32%의 고속 성장을 구가해왔다. 지난해 예금 잔고가 10조9700억엔으로 사상 처음 10조엔을 돌파했다. 점포와 종이통장이 없는 저비용 구조로 가격 혁신을 일으킨 것이 일본 인터넷은행의 성공 요인이다. 주력 상품은 고금리 예금이었다. 지난 10월 기준 일반 시중은행의 1년짜리 예금 금리는 연 0.025%이지만, 인터넷은행 금리는 연 0.09~0.2%로 일반 은행의 최대 8배다.

출범 7년 만에 고객 30만명을 모은 독일의 피도르 은행은 '1분 안에 대출해준다'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다. 199유로를 6개월간 대출해주는 '이머전시론'의 경우, 대출 절차가 60초 안에 끝난다. 프랑스의 헬로뱅크는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모바일기기에서 모든 은행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게 해 편의성을 높였다. 미국의 찰스 슈왑 은행은 개인 투자성향에 따라 자동화된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특화해 위상을 확고히 한 사례다. 중국도 텐센트와 알리바바 등 IT(정보기술) 업체들이 스마트폰 전용 인터넷은행을 운영하고 있고, 중국의 최대 검색포털 사이트인 바이두 역시 최근 인터넷은행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