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든 의사들의 공공의 적은 '누가'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이며 의사였던 누가(Luke)는 아니다. 의사들은 진료실이란 전쟁터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들이 알고 있는 수많은 누가와 싸우고 있다. 누가는 의료인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는 의학 지식을 알고 있기도 하고, 분하게도 의사인 나보다 환자와의 관계가 더 돈독해 보이기도 한다.

"누가 그러는데 이 병에는 이게 좋다는데 맞아요?" "선생님, 누가 이렇게 하는 것보다 저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던데요?" 개원의(開院醫)들끼리 모이면 누가와 싸운 화려한 후일담들이 총칼이 난무하는 전쟁터 이야기만큼이나 풍성하다. 이상한 것은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친구들은 누가와 싸워본 경력이 확실히 적다. 동네에서 조그만 의원을 혼자 운영하는 처지라 권위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큰 병원에 가서 이런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가 미운털이 박힐까봐 환자가 꺼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나마 이렇게 '누가 그러는데'라고 물어본 환자들은 의사들의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문제는 의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누가가 시키는 대로 해서 병의 진단이나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다. 내가 개원의 생활을 시작한 15년 전만 해도 이런 누가들은 환자의 친구, 환자 친구의 친구, 아니면 같은 환자들끼리의 소문으로 몸집을 키워 왔다. 환자들이 질병에 대해 정보를 얻기가 비교적 어려웠고 의사의 말도 권위가 있던 시절이어서 "누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요?"란 한마디로 환자로 빙의한 누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지금은 다르다. 정보든 헛소문이든 한번 생산되면 바이러스 같은 번식력으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SNS 때문에 '누가와의 전쟁'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화려한 그래픽과 멋진 글씨체, 그럴듯한 내용이 합쳐지면 진시황이 꿈꿨던 영원불멸의 콘텐츠가 탄생한다. 의학과 전혀 관련 없는데도 유명한 사람의 사례까지 합쳐지면 그 위력은 배가된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인터넷이라는 벌판을 떠돌아다니며 병으로 심신이 약해져 있는 환자들의 마음 빈 공간을 파고든다. 몇 년이 지나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느 틈에 다시 인터넷에서 활개치고 있다.

오늘 어떤 누가 이야기를 갖고 진료실에 온 환자는 내일 다른 누가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전염된 환자가 보이는 증상은 다음과 같다. ①누가 이야기한 것이 다 내 이야기 같다. ②누가 말한 대로 해보면 내 병이 극적으로 호전될 것 같다. ③누가의 말을 부정하는 의사는 돌팔이일지도 모른다. ④누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적어도 해로울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 해보는 게 좋다.

이 글을 읽으며 뜨끔한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진부하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전문가의 오만과 독선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가보다는 의사가 병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 누가 하는 이야기가 솔깃하다 해도 눈과 귀를 닫아야 한다. 그래도 솔깃하다면 의사에게 진위를 물어봐야 한다. 누가 또 아는가? 수많은 누가들의 주장 때문에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치료법이 기적적으로 만들어질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대한민국 의사들은 누가와 싸운다.

▲5일자 B7면 '누가와 싸우는 의사들' 기사에서 누가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가 아니므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