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먼저 ISA를 도입한 영국과 일본의 운영 사례를 통해 한국형 ISA를 어떻게 운영하고 개선해야 만능 통장 이름에 걸맞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짚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日 제로금리 탈출, 공격투자 바람

도쿄에서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사업가 무로이 유스케(59)씨는 지난해 1월 일본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Nippon Individual Savings Account)가 시행되자마자 동네 미즈호은행으로 달려가 계좌를 새로 텄다.

잠자고 있던 은행 예금 중 연간 투자 한도인 100만엔(945만원)을 꺼내 NISA 계좌에 꽉 채워 넣었고, 이 돈으로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다. 그는 "이제까지 저금해봐야 0.1~0.2%의 쥐꼬리만 한 이자에 이자소득세까지 떼갔는데, 새로 산 펀드에선 배당으로만 3% 수익이 나오고 있다"며 "내년에 투자 한도가 120만엔으로 높아진다니, 돈을 더 벌 생각에 벌써 신이 난다"고 말했다.

회사원 고이누마 다카시(34)씨도 최근 NISA 계좌에 가입하면서 '예금 80%, 투자신탁 20%'였던 자산 구성을 '예금 60%, 투자신탁 20%, 주식 10%, 부동산투자신탁(REITs) 10%'로 공격적으로 바꿨다. 주식과 부동산투자신탁은 NISA 계좌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 계좌에선 얼마를 벌든 세금 한 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NISA가 '예금 왕국' 일본의 보수적인 투자 문화를 바꾸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랫동안 장롱과 은행 계좌에서 잠자고 있던 현금이 증권과 부동산신탁 같은 공격적인 투자 자산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20세 이상 일본 거주자라면 누구나 매년 100만엔씩 10년간 NISA 계좌에 투자할 수 있고, 이 계좌에서 얼마의 수익을 내든 세금을 내지 않는 획기적인 비과세 혜택을 준 덕분이다.

◇제로 금리 홀대받던 돈이 12% 수익 내…투자 문화 대변혁

오랜 세월 일본인들의 자산 구조는 변함이 없었다. 55%가량이 예금·현금으로 묶여 있고 30% 가까이가 보험이나 연금에 들어가 있을 뿐, 주식에 투자한 돈은 5~6%에 불과했다. 은행에 돈을 맡겨도 이자라 부르기 민망한 소수점 한 자리대 수익을 얻는데도 그랬다.

특히 전체 현금의 60%인 약 1000조엔을 틀어쥔 단카이 세대(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주식형 펀드마저 다달이 원금을 헐어 일정한 돈을 주는 월 지급식 펀드만 선호할 정도로 투자 DNA가 실종된 듯 보였다. 이렇듯 활력이 떨어진 가계자산 구조는 일본 정부에도 큰 고민거리였다.

그랬던 사람들이 NISA가 나오면서 달라지고 있다. NISA 계좌 가입자 중에는 이제까지 투자를 한 번도 한 적 없는 초심자가 전체의 19.8%나 된다.

또, 시간이 갈수록 돈 많은 노년층보다 2030 젊은 세대의 가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작년 1월부터 올 6월 말까지 NISA 계좌가 921만개 개설됐고, 투자금 5조1936억엔(약 50조원)이 예치됐는데 이 중 3조엔(약 28조원)가량이 증시로 흘러들어 가 주가 상승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수익률도 좋아 전체 NISA 계좌의 평균 수익률이 11.6%(작년 말 기준)에 달한다. 제로 금리에 익숙해 있던 일본인으로선 깜짝 놀랄 만한 성과다.

NISA 덕분에 2020년까지 25조엔을 증시로 끌어들이겠다는 아베노믹스 성장 목표가 초과 달성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아이자와증권 아쓰시 오이이시 기획부장은 "1996년 금융 빅뱅부터 시작해 외환 거래 자유화, 위탁매매 수수료 자율화, 온라인 증권 거래 활성화, 자본이득세 20%에서 10%로 경감 등 다양한 정책이 나왔지만, 투자 문화를 바꾸는 데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했다"며 "NISA는 투자 수익 전면 비과세라는 파격적인 조치 덕분에 투자자의 관심을 끌었고, 드디어 예금 비중이 줄어드는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한도 늘리고 어린이 계좌까지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은 발 빠르게 제도 개·보수에 들어갔다. 연간 투자 한도를 100만엔에서 120만엔으로 높이는 방안이 통과됐고, 현재 2023년 일몰로 돼 있는 이 제도를 영국처럼 영구화하는 방안과, NISA 계좌와 다른 계좌 간 손익을 통산(通算)해주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아버지가 자녀에게 이들 명의로 투자하면 전액 비과세 혜택을 주는 '주니어 NISA'다. 내년 1월부터 도입되는 이 제도는 높은 상속세를 피해 재산을 물려주려는 고령층의 돈을 자본시장으로 흘러들게 하는 '파이프 라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김은정 기자

중·저소득층 가입비중 큰 英

"연금外 버팀목"… 英 만능통장 가입자 75%가 서민

영국 런던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닐 피어시(47)씨는 ISA (Individual Savings Account·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가입자다. 매년 납입 상한액만큼 ISA에 돈을 넣어두고는 그 돈으로 MMF(머니마켓펀드) 등에 투자하면서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올해도 1만5000파운드(약 2660만원)를 ISA에 넣었다. 그는 "은퇴 후 연금 외엔 마땅히 믿을 구석이 없었는데 ISA가 대안인 것 같아 개설했다"며 "비과세 혜택도 좋지만 ISA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돈 모으는 습관이 길러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런던의 50대 택시 기사 스튜어트씨도 ISA 계좌를 튼 지 올해로 10년째다. 그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꾸준히 납입하는데, 계좌 하나로 자산을 관리하면서 필요할 때는 언제든 돈을 인출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1999년 4월 ISA를 도입한 'ISA 종주국' 영국에는 미래에 대비해 ISA에 가입하는 이들이 많다. 영국 정부는 ISA를 통한 국민 재산 증식을 하나의 복지 제도로 정착시켰다.

◇중·저소득층 위한 '국민 계좌'

영국 ISA는 한 계좌에 예·적금 등을 편입하는 '현금형 ISA'와 주식·펀드 등을 편입하는 '투자형 ISA'로 나뉜다. 가입자는 투자 성향에 따라 ISA를 택하고, 연간 납입액 1만5240파운드(약 27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영국 정부가 ISA를 고안한 배경은 저소득층의 보유 자산을 부동산에서 예금·채권·주식 같은 유동성 자산으로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영국 투자협회의 피터 캐퍼 리스크 전문가는 "저소득층이 유동성 자산을 별로 보유하지 않다 보니 그들이 먹고살 길을 마련해야 하는 정부 입장으로선 부담이 컸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ISA를 통해 중·저소득층의 유동성 자산을 늘리겠다"고 천명했고, 계좌 최소 보유 기간 등 종전 절세형 금융 상품이 갖고 있는 제한을 없애 저소득층도 쉽게 가입할 수 있는 길을 텄다.

ISA 가입자 수는 가파르게 늘어 2013년 기준 2268만명(가입 가능 인구의 46%)에 이르고, 누적액은 4830억파운드(약 850조원)에 달한다. 특히 중·저소득층의 가입 비율이 높다. 2013년 기준으로 소득별 ISA 가입자 수를 보면 연소득 1만~1만9999파운드 구간이 694만명(30.6%)으로 가장 많다. 연소득 2만파운드 미만이 전체의 56.6%이고, 3만파운드(약 5300만원) 미만으로 범위를 넓히면 전체 가입자의 74.6%에 달한다. 영국 내 ISA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개인투자 부문장 조너선 휴잇은 "ISA는 '절세에 유리한 포장지(tax-efficient wrapper)'로 홍보되기도 한다"고 했다. 속을 어떤 상품으로 구성하든 ISA라는 포장지로 감싸면 누구라도 세금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복지 부담 줄인 '주니어 ISA'

영국 학부모 중에는 자녀 명의로 ISA를 개설해 돈을 납입하는 이들도 많다.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연간 4080파운드(약 720만원)까지 세제 혜택을 주는 '주니어 ISA'다. 영국 정부는 2011년 긴축 정책의 하나로 대학 보조금을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대학들은 기존 3000파운드에서 최대 9000파운드까지 등록금을 올렸다. 주니어 ISA는 각 가정에서 등록금 인상에 대비하라고 정부가 마련한 수단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악사(AXA)의 자회사 악사IM에서 ISA를 담당하는 아드리안 로콕씨는 "정치적·정책적 목적에서 주니어 ISA를 도입했는데, 혜택과 간편함 덕분에 인기가 많다"며 "이것이 성인 ISA로 이어지니 업계 입장에서도 새 고객이 형성되는 제도"라고 했다. 2011 ~2012년 7만1000개였던 주니어 ISA신규 개설 계좌 수는 2014 ~2015년 51만개로 늘었다.

◇납입 한도 늘려주고, 상품도 다양화

영국 정부는 2008년 ISA를 사실상 영구적인 제도로 확립하고, 납입 한도를 해마다 늘려 혜택을 키우면서 가입자도 늘리고 있다.

다만 투자 업계에서는 투자형에 비해 현금형 ISA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지는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영국 국민 사이에서 수익성보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성향이 높아진 탓에 신규 가입자의 75% 이상이 현금형 ISA를 선택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의 ISA 담당 제임스 레인보씨는 "투자형 ISA 비중을 더 늘릴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안준용 기자

서민 재산 불리는 도구로

日 만능통장은 갓난아기도 가입… 한국도 대상자 확대해야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작년 12월 의회에서 "크라우드 펀딩에 돈을 넣는 것도 ISA 투자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존 영국의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로는 예금·주식·펀드 등에만 투자할 수 있는데, 핀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크라우드 펀딩(인터넷 모금으로 대중들의 투자를 받는 것)에 투자해도 비과세 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핀테크를 육성하면서 연 5~10% 수익을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내년 4월부터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할 수 있는 '혁신 금융형 ISA'를 도입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영국에 이어 작년 1월 ISA를 도입한 일본은 내년 1월부터 가입 대상을 현재의 '20세 이상'에서 '태어날 때부터'로 바꾼다. ISA 도입 2년 만에 가입 대상을 갓난아이까지로 확대하는 주니어 NISA(일본형 ISA)를 도입하는 것이다. 영국은 ISA를 주니어 ISA로 확대하는 데 12년 걸렸는데 일본에서는 그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영국·일본 등 ISA 선진국들은 이처럼 지속적으로 ISA의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투자 대상도 다양화하고 있다. 반면 내년 3월 출시될 우리나라의 ISA는 가입 문턱이 높고 투자 대상도 예·적금 일변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시행키로 한 한국형 ISA를 더 적극 개선해서 서민층 재산 형성에 도움도 주고 투자 문화도 활성화하는 선진국 스타일의 ISA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들은 ISA를 계속 진화시켜

영국과 일본은 당초 ISA를 도입할 때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가입 한도 내에선 얼마의 이익이 나든지 간에 세금을 안 물리는 '열린 구조'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수시로 막힌 틈새가 없는지 점검해서 가입 대상과 투자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내년 3월 출시 예정인 '한국형 ISA'는 가입 자격을 소득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해 정기적인 근로 소득이 없는 노년층이나 주부, 청소년 등은 가입할 수가 없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당초 정부안에서 제외됐던 농어민을 포함시켰는데, 앞으로도 가입 대상을 더 확대하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영국, 일본 사례를 참고해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주니어 ISA나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ISA를 도입할 필요도 제기된다.

비과세 한도를 늘려주는 방법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형 ISA의 비과세 한도는 연간 200만원(연소득 5000만원 이하는 250만원)으로 묶여 있다. 영국은 2008년 이후 물가 상승을 감안해서 거의 매년 가입 한도를 늘려준다. 영국은 가입 한도 내에선 어디에 투자하든 이자나 양도차익에 세금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가입 한도를 늘려 주면 비과세 액수도 자동으로 늘어난다. 2008년 주식·펀드에 투자하는 투자형 ISA는 연간 7200파운드, 예금 위주의 현금형 ISA는 연간 3600파운드의 한도가 있었지만 현재 두 유형 모두 연간 한도가 1만5240파운드(약 2700만원)로 올라갔다.

◇초저금리 시대에 '국민 재산 불리기' 도구로 만들어야

'예금에서 투자로'라는 투자 패러다임의 전환에 목표를 뒀던 일본 정부는 NISA를 도입할 때 아예 예·적금은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차단벽을 쳤다. 주식과 펀드, 투자신탁 등 위험자산만 투자 대상으로 한정했다. 막대한 예금·현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들게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 NISA를 통해 3조엔(약 28조원)이 증시로 흘러들어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을 줬다.

반면 한국형 ISA는 일본만큼 투자를 독려하게 설계되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 교육 등으로 투자 문화를 확산하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한국형 ISA는 은행 예금만 담는 과거 '세금우대 종합통장'의 역할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영국에선 65세 이상 노인들이 ISA를 '절세 예금 통장'으로만 이용하는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서민 재산 형성'이라는 본래 도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초(超)저금리 시대엔 1% 내외 금리를 주는 예금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펀드 등에도 분산 투자해야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금에만 집착하는 성향이 강했던 일본에선 NISA의 정착을 위해 일본증권업협회가 중심이 돼서 이제까지 증권투자 경험이 없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펼치는 등 투자자 교육에 중점을 뒀다.

ISA 판매를 맡을 은행·증권사의 신뢰도도 높아야 한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ISA로 더 많은 사람이 위험도가 높은 투자 상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업계가 신뢰를 주지 못하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증권사의 밀어내기 식 판매나 가입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불완전 판매는 엄격히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철배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본부장은 "ISA의 주요 가입 대상인 개인 투자자가 스스로 자산 관리를 하려면 영국 등 선진국처럼 특정 금융회사에 속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컨설팅을 해 줄 수 있는 독립투자자문업자(IFA)가 필요한데, 정부가 이를 빨리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방현철, 김은정, 안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