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을 행사하는 대주주 오너가 있는 40대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 1356개 중 총수가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회사 비율이 7.7%에 불과하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23일 발표했다. 작년의 8.5%보다 더 떨어졌다. 총수의 2세, 3세가 이사로 등록한 기업 비중도 6.9%뿐이었다. 재벌 오너가 계열사에 대해 절대적인 경영권을 휘두르면서도 등기이사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는 '무책임 꼼수 경영'이 더 심해진 것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부진 사장이 등기이사인 호텔신라 한 곳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66개 계열사 중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자녀들이 등기이사에 오른 곳이 한 곳도 없었다. 10대 재벌 중에선 징역 4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던 SK 최태원 회장을 비롯, 현대중공업 정몽준 고문, 한화 김승연 회장이 어느 계열사에서도 등기이사를 맡지 않았다.

재벌 총수들이 등기이사를 기피하는 것은 이사회 의결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연대책임에서 빠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2013년 상장사 등기이사의 연봉을 공개하는 법이 시행되면서 총수와 그 일가가 이사회에서 빠지는 경향이 현저해졌다. 이로 인해 총수 일가가 이사회로 하여금 회사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지시하는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기형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게다가 총수 일가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 2239개 대기업 이사회에 오른 안건 5448건 가운데 사외이사가 반대·기권하거나 수정 의견을 낸 경우는 13건(0.24%)에 불과했으며, 사외이사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단 2건에 불과했다. 경영 전반에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오너와 "노(No)"라고 말하지 않는 사외이사들 때문에 주식회사의 최고 집행 기구인 이사회는 껍데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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