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27일 신당(新黨)의 기조를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1970년대 개발독재와 1980년대 운동권 패러다임으로는 2016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새 정당은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 대신 '합리적 개혁노선'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대정신으로 격차 해소와 통일을 꼽고 경제정책 기조로는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분배 아래 성장하겠다는 '공정 성장론'을 제시했다. 이어 "30∼40대(代) 우리 사회의 허리(세대)가 정치의 생산자, 주체, 중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안 의원의 이날 회견에서는 산업화 세력과 운동권 세력, 보수와 진보의 양(兩) 극단을 모두 경계하고 30~40대 중심의 새로운 정치 세력을 규합하겠다는 포부를 읽을 수 있다. "일자리, 건강, 교육, 문화, 체육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재정이 많이 든다면 일정한 증세는 피할 수 없다"며 증세론(增稅論)을 들고나온 것도 기존 정당들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이런 신당 비전은 웬만한 정치인이라면 누구든 내놓을 수 있는 원론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정치에 입문한 뒤 3년여간 가다듬었다는 '새 정치'의 비전치고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그와 함께 새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인물이 어떤 얼굴들인지 오리무중인 점도 마찬가지다. 안 의원은 오늘의 정치 현안인 노동개혁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 테러방지법 등 쟁점 법안과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책임 있는 정치를 하겠다면 통일·저성장 같은 근본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장 눈앞에 닥친 뜨거운 쟁점들에 대한 입장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안 의원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새정치연합과 비슷한 20% 안팎 지지를 받는 것은 국내 정치 시장(市場)에 그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상식적인 내용만 나열하며 개인 이미지에 의존하는 정치를 지속하면 그 지지는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그럴듯한 원론' '듣기 좋은 말'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에 옮길 인물들을 내놓으면서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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