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

평창동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번 더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부모님이 35년째 살고 있는 집이라 했다.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단연코 '책'임을 선언하는 거실이 있고, 구석에는 낡은 피아노와 빛바랜 베토벤 명곡집 한 권이 보인다. 이 집 차남(次男)인 옥스퍼드대 수학과 김민형(52) 교수가 예외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악보집. 평창동으로 이사 10년 전인 수유리 살 때부터, 10대 시절부터 끼고 보던 것이라 했다. 베토벤 닮은 특유의 헤어스타일은 "머리 감고 바로 자면 이렇게 된다"고 해맑게 덧붙이면서.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김 교수를 평창동 부모님 집에서 만났다. 한국 인문학의 한 정점(頂點)으로 불리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 소설가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를 영역한 영문학자 설순봉이 그의 부모다.

시와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수학자. '르네상스인'을 고전적 의미로 한정한다면 가장 앞줄의 한 명이 아닐까. 김 교수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20통을 묶은 책 '아빠의 수학여행'(은행나무 刊)을 읽었다. 영어로 썼기 때문에 국내 번역자가 옮긴 이 편지 20통에는 하나같이 워즈워스, 바이런, 하이네 등 낭만주의 시인의 시가 들어 있었다. 김 교수는 유년 시절부터 암송하던 시편들이다. 최근의 한 수학콘서트에서는 쇼팽의 악보에서 발견하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강의하기도 했다.

음악을 수학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학을 시로 옮기는 건 가능할까.

"쇼팽의 악보는 카오스(chaos·무질서) 그 자체죠. 겉으로 보면 굉장히 복잡하고 어지러워요. 하지만 연주를 들으면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어요. 선율은 아름답고 멜로디는 울창하죠. 수학이 그래요. 부분적 복잡성이 합쳐져서 전체적으로는 순수한 구조의 에센스가 나타납니다."

집 계단까지 가로막은 아버지의 책들을 김민형 교수는‘책무덤’이라 불렀다. 일본 작가 오카자키 다케시의 책‘장서의 괴로움’도 인용했다. 하지만 그 덕에 시를 사랑하는 수학자가 탄생한 것이 아니겠는가.

'잘 모르겠지만' '제 대답에 실망하시겠지만'이라는 겸손을 반복하면서도, 계속된 질문에 그가 내놓은 대답이다. 영시(英詩)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18, 19세기 낭만주의가 지닌 규칙의 아름다움. 특히 소넷(sonnet)을 즐긴다고 했다. 14행의 제한 속에서 운(韻)의 리듬과 변주가 만들어내는 매력.

이 시적(詩的) 수학자(poetic mathematician)의 '친절한 개인교습'을 듣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시인 바이런(1788~1824)과 그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떠올랐다. 예술적 열정이 지나쳐 수학을 가르쳤더니 세계적인 수학자가 되어버렸다는 천재. 김 교수 역시 서울대 첫 조기졸업에, 한국인 최초의 옥스퍼드대 정교수의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수학자가 된 그의 이력에도 부모님이 개입했을까.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스타일이 아니셨어요. 저도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었고요. 단지 집에 책이 많고 음반이 많으니까, 심심할 때 혼자 찾아본 거죠. 학교를 안 다녔으니까요."

중학교 1학년 때 신장염으로 입원하면서, 그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외부에는 '홈스쿨링'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더니, "홈스쿨링은 무슨, 그냥 논 거죠"라고 반박한다. 학교 친구 없는 6년은 친화력 키울 기회를 줄였겠지만, 대신 영시를 암송하고 명동의 클래식 음악 다방 찾는 조숙한 소년을 길러냈다.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수학과에 합격. 아버지의 유일한 조건은 '순수 학문'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너무 유명한 부모님의 존재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김 교수는 다시 해맑은 표정으로 왜 그게 부담이냐고 물었다. 아무리 잘하더라도 부모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싫지 않으냐 했더니, "나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뿐인 성격인 것 같다"며 투명하게 웃는다. 리더가 된다거나 유명해지기를 꿈꾼 적이 없다는 것.

예고 없이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적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잠시 쑥스러워했지만, 'It is a beauteous evening'으로 시작하는 워즈워스(1770~1850)의 14행 소넷 전문을 단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고 써내려갔다. 태어나자마자 헤어졌던 딸을 다시 만나 산책하는 시인의 환희. 이런 구절이 있다.

'아이야, 소녀야, 여기서 나와 함께 걷자꾸나/ 네가 심각한 철학을 모른다 해도/ 본성은 더없이 성스럽구나'

사회와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겠다는 야심가들이 너무 많아 보이는 한국에서, 이런 '이기적인 수학자' '낭만적 과학자'도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정의만큼이나 아름다움도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