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Books팀장

쿠온이란 출판사가 있습니다. 2010년부터 일본에서 한국문학을 번역해 펴내고 있는 예외적 출판사죠. 25년 전 일본으로 유학 갔다가 "좋아서, 좋은 걸 알리고 싶어서" 시작한 김승복 대표의 1인 출판사입니다.

쿠온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김중혁·박성원·김연수·은희경·정세랑·구효서의 소설과 신경림 등의 시집을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로 소개해 왔습니다.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일본 문학은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에 소개되지만 그 역은 쉽지 않죠. 한국에서 번역되는 일본 서적은 연 900종이 넘는데, 일본에서 출간되는 한국 번역 도서는 20여 종.

재정적으로는 분투(奮鬪)지만, 덕분에 쿠온은 신뢰의 이름이 됐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쿠온에서 출간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해 "일시에 마음을 빼앗긴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서평을 쓰기도 했죠.

김 대표로부터 엊그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올해부터 한국에서도 책을 펴내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권의 책을 동봉했더군요. 불교를 바탕으로 인생의 의미와 진정한 행복에 대해 주창해 온 다카모리 겐테스의 '왜 사는가'와 같은 작가의 '내 인생의 꽃다발'.

일본에 있는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는 제가 읽고 감동한 한국의 문학을 일본어권 사람들에게 소개했다면, 이제 제 고국 한국에서도 제가 오래도록 품어온 감동의 일본 서적도 소개하려 한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이 '양서'를 한국 출판사에 소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 했지만, 상업성 등의 이유로 좋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면서요.

3년 전 이 출판사가 기획한 '한국의 지(知)를 읽다'를 떠올렸습니다. 노마 히데키 일본 교양대 객원교수가 엮은 이 책은, 일본의 문예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 등과 한국의 김병익·성석제·승효상 등 한·일 지식인 140명이 참여했습니다. 한국의 지(知), 하면 떠오르는 책을 추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었죠. '한국의…'는 일본의 인문·사회과학 부문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책에 수여하는 파피루스상을 받는 등 한·일 인문학 교류의 상징 같은 작품이 됐습니다.

일본의 좋은 책을 소개하는 김승복 대표의 시도가 건강한 한·일 교류의 또 하나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창(窓)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체험으로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