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와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는 둘 다 로마 출신으로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두 사람이 성인이 돼 만났을 때 모리코네는 단박에 그를 알아보고 "야, 나 기억 안 나?"라고 말을 걸었다. 레오네는 미국에서 '마카로니 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이란 이탈리아풍 서부영화 장르를 만들어낸 감독이다. 모리코네가 1964년 '황야의 무법자'에 참여한 이후 두 사람은 단짝이 돼 '석양의 건맨' 등을 만들었다.

▶'황야의 무법자'로 성공했을 때 그는 '레오 니콜스'란 가명을 쓰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 전공자로서 상업 음악을 하는 게 부끄러워서였다고 한다. 모리코네는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작곡과 트럼펫을 공부했다. 하지만 당장 밥벌이가 급해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했다. 무명 시절 그는 B급 액션 영화에다 포르노물까지 맡았다.

▶모리코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 천국' 등 약 500곡의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그는 작곡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덕에 가벼운 음악이든 무거운 음악이든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섞을 수 있었다. 자기만의 선율을 지키면서 서부영화에 처음으로 전자기타를 도입하는 등 독창적인 실험도 멈추지 않았다. 첫 대목의 휘파람 소리가 인상 깊은 '황야의 무법자' 테마 음악은 서부영화를 연상시키는 상징처럼 됐다. 박찬욱 감독은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문명사회에 없다"고 했다.

▶영화음악의 전설로 불리면서도 모리코네는 이상하게 아카데미 음악상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엊그제 제88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그가 영화 '헤이트풀 8'(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로 음악상을 받았다. 영화음악 인생 55년, 1979년 처음으로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른 지 37년 만이다. 백발에 두꺼운 안경을 낀 88세 거장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모리코네는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주최 측 부주의로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레드카펫을 걷는 등 홀대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2011년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의 첫 도시로 서울을 택했다. 전주(前奏)만 듣고도 어떤 노래인지 아는 한국인들의 환호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모리코네는 음악을 "삶이란 감옥에 갇혀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건네는 한 잔의 위로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모리코네에게 주어진 아카데미상엔 그간 그의 음악으로 위로받은 사람들이 보내는 감사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