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문을 연 국내 최초 무장애 통합 놀이터 '꿈틀꿈틀 놀이터'. 지난 1월 개장하고 두 달 남짓 흘렀을 뿐인데, 소문을 듣고 온 아이들로 매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턱이 높아서, 계단이 많아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그동안 놀이터에 오지 못했던 장애 아동부터, 편리하고 재미난 놀이기구를 찾아온 비장애 아동과 학부모들까지 이용자도 다양하다.

개장 첫날부터 꿈틀꿈틀 놀이터를 애용하고 있다는 정미영(36·함께가는마포장애인부모회 팀장)씨는 "이제야 아이가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놀이터는 우리 아이가 갈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휠체어에 탄 우리 아이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혹시나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늘 두렵고 불편했거든요. 서윤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놀이터에 가본 횟수도 손에 꼽힐 만큼 적어요. 사설 치료센터에서 공간감각 훈련을 위해 타 본 실내용 그네가 전부였죠. 하지만 이곳에선 서윤이도 그네, 미끄럼틀, 회전 놀이기구 모두 탈 수 있어요(웃음)."

지난 1월 13일, 꿈틀꿈틀 놀이터 개장식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회전무대를 이용하고 있다.

◇NGO·공공기관·기업·학부모…통합 놀이터 위해 머리 맞댔다

"10년 걸렸습니다."

배융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 사무총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무장애 놀이터 '상상 거인의 나라'가 세워진 것은 2006년. 이후 2008년 국회어린이집에 무장애 놀이터 '애벌레의 꿈'이 세워지긴 했지만, 두 놀이터 모두 장애·비장애 아동이 함께 노는 '통합'에는 미치지 못했다.

배 총장은 "유럽 등 선진국에선 놀이터를 만들 때부터 '어린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면서 "기존의 무장애 놀이터가 장애 아동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휠체어 진입로를 확보하는 수준에 그친 반면, 꿈틀꿈틀은 모든 어린이를 위해 설계한 첫 놀이터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 첫 시도인 만큼 어려움도 많았다. 해외 사례를 참고하려 해도 국내 실정과는 맞지 않았다. 관련 시설을 시공해본 업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통합 놀이터의 필요성과 어려움에 공감한 이들이 곳곳에서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서울시설공단은 놀이터를 설치할 부지(2800㎡)를 제공하고, 안전 관리 노하우를 공유했다. 놀이터 계단의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고, 시설물 모서리를 투명한 튜브로 감아 사고 위험을 낮춘 것. 2005년부터 통합 놀이터를 추진해온 아름다운재단은 총괄 기획을, 대웅제약은 비용을 지원했다. 경기대 CDL(Community Design Lab)은 선진 통합 놀이시설에 대한 연구를 맡았다.

놀이터 내부는 시민사회의 참여로 꾸며졌다. 무장애연대와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가 사례 연구와 시공 모니터링을 담당했다. 장애인 아동 가족들도 직접 디자인 설계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보탰다. "튜브 미끄럼틀 사이사이를 투명하게 만들어 보호자와 눈이 마주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미끄럼틀 옆에 계단을 설치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를 잡아주는 건 어떨까" 등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세밀한 포인트를 짚어 완성도를 높인 것.

이 때문에 꿈틀꿈틀 놀이터엔 그네 종류도 다양하다. 널찍한 바구니형 그네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탈 수 있고, 등받이와 안전벨트가 있는 의자형 그네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 아동도 이용할 수 있다. 모래 놀이터 역시 장애, 비장애 어린이가 얼굴을 마주보고 다양한 신체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디자인 설계를 담당한 조경작업소 '울'의 김연금 소장은 "막상 제작에 들어가 보니 휠체어 회전 반경이 부족하거나, 아동이 보호자와 동행할 수 있도록 시설 자체가 커져야 하는 이슈도 있었다"면서 "오랜 기간 함께 고민하고 적용한 만큼 장애, 비장애 아동 모두가 만족할 만한 놀이터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정경훈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국장은 "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체 조성·설계·시공 과정을 매뉴얼북으로 제작했다"면서 "꿈틀꿈틀 놀이터는 NGO, 공공기관, 기업, 장애 아동 학부모 등 다양한 이의 협력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합 놀이터 확충 하려면… 규제 개선돼야

그러나 제2, 제3의 꿈틀꿈틀 놀이터를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규제가 까다롭거나 아예 규정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 장애인법 안에 수직 시설의 높이 제한, 휠체어 통로 설치 의무화 등 장애 아동의 놀이 환경 기준을 일찍이 마련한 미국과 대조적이다. 배 총장은 "독일의 경우 무장애 놀이터를 표방하지 않는 일반 놀이터에도 휠체어를 탄 채 접근하는 데 무리가 없다"면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준다는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통합 놀이시설용 모듈(module·분해, 재조립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설치가 쉽다)을 생산하는 국내 제조업체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글로벌 놀이시설 제조사인 Hags(스웨덴), Kompan(미국), Inclusive Play(영국), Kinderland(독일)는 장애·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쓸 수 있는 미끄럼틀, 그네, 시소 등의 놀이시설을 다양하게 생산 중이다. 반면 국내 제조업체들은 "수요가 적고 관련 규칙이 충돌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생산을 꺼리고 있다.

꿈틀꿈틀의 시설 제조를 맡은 정재욱 스페이스톡 대표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제조사에서도 거기에 맞춰 경험을 쌓고 제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며 "규제 개선과 더불어 통합 놀이시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면 (통합 놀이시설 제조를 꺼리는) 업계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