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폐 발행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여성이 지폐 모델로 등장하게 됐다. 미 재무부는 20일(현지 시각) 20달러 지폐 앞면 모델로 노예 해방에 앞장선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0~ 1913)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잭 루 재무장관은 "터브먼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 참여와 리더십에서 귀감이 될 만하다"며 "여성이 너무 오랫동안 지폐에서 빠져 있었다"고 했다. 기존 20달러에는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지폐 앞면에, 백악관이 뒷면에 있었다. 터브먼이 앞면 모델이 되면서 잭슨 대통령은 백악관과 함께 20달러 지폐 뒷면에 자리 잡게 된다.

미 재무부가 20일(현지 시각) 20달러 지폐 앞면 인물을 앤드루 잭슨(왼쪽) 제7대 대통령에서 노예 해방에 앞장선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오른쪽)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사진은 한 시민단체가 가상으로 터브먼의 모습이 담긴 20달러를 만든 것이다.

앞면에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뒷면에 재무부 건물이 있던 10달러 지폐는 앞면은 유지하고 뒷면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 5인 모습이 추가된다. 5달러 지폐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있는 앞면은 유지하고, 링컨 기념관이 있던 뒷면에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인권 운동가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 등이 추가된다. 뉴욕타임스는 "흑인이 미 화폐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고, 여성이 지폐에 등장한 것도 1891~1896년까지 통용된 1달러짜리 은 태환증권(silver certificate·은으로 교환해주는 증권) 이후 100년 만이다"고 했다.

메릴랜드에서 노예로 태어난 터브먼은 26세 때 노예제가 폐지된 펜실베이니아주로 탈출했고, 이후 노예 탈출을 돕는 조직에 가입해 흑인 노예 수백명을 북부로 탈출시켰다. 남북전쟁에도 참여했으며, 말년엔 여성과 흑인 인권 운동에 헌신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6월부터 여성 참정권 확보 100주년인 2020년에 맞춰 여성을 모델로 하는 지폐 발행을 추진해왔다. 처음엔 10달러 지폐의 해밀턴 장관을 대신해 여성을 내세울 생각이었으나, 해밀턴 장관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해밀턴'이 인기를 끌면서 미국인들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일었다. 이후 재무부는 인디언 추방법을 제정한 잭슨 대통령을 배제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루 재무장관은 "2020년까지 지폐 3종의 도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