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이란 권력서열 1·2위와 잇따라 면담]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이란을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1962년 국교 수교 이후 첫 방문이다. 이란은 인구 8000만명에 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원유 매장량 4위의 중동(中東) 지역 핵심 국가다. 인구의 절반이 25세 이하일 정도로 젊어 성장 잠재력도 크다. 핵 포기 선언으로 올 1월 서방의 경제 제재가 풀리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앞다퉈 이란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란은 2020년까지 211조원 규모의 건설 사업을 발표했다. 건설·조선 등 침체 산업의 활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통신 인프라와 보건·의료 시스템 등 손잡을 수 있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란과 중동을 '오일 달러'라는 측면에서만 보던 시대는 끝났다. 1970년대식 시야에 머물러 있기엔 우리 몸집이 커졌고, 중동과 한반도 정세가 연결된 지점도 넓어졌다. 이란은 과거 이라크·북한과 함께 미국이 '악의 축'으로 꼽았던 나라다. 그 사이 이라크 정권은 무너졌고, 이란은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했다. 남은 곳은 북한뿐이다. 이번에 박 대통령과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북핵과 관련한 메시지가 나온다면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란과 북한의 군사·정치적 관계를 생각하면 북은 기존의 국제사회 제재와는 다른 차원의 압박을 느낄 것이다.

나아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중동 지역 전략을 전면적이고 종합적으로 점검·조정할 필요도 있다. 유가 하락으로 위기를 겪고는 있지만 중동이 25개국 5억명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앞으로도 에너지·건설 분야에서 우리의 최대 파트너일 수밖에 없고 휴대폰·가전·자동차 시장 등에서도 세계 어느 곳 못지않게 중요한 전략 시장이다. 사우디는 최근 '탈(脫)석유, 산업 다각화'를 위한 비전 2030을 발표했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구에 대한 불신은 뿌리 깊은 반면 우리 기업 이미지는 좋은 편이고 한류(韓流) 열풍까지 있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넓다.

종교·민족 분쟁이 심한 만큼 정치 문제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의료·복지·인권을 증진하는 각종 사업을 병행한다면 한국 브랜드를 한 차원 높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중동에 대한 우리의 편견도 바꿔야 한다. 2011년엔 오일 머니 유치를 위한 이슬람 채권(수쿠크) 도입 법안이 종교적 반대로 불발됐고, 최근엔 익산시의 할랄푸드(무슬림 음식) 공단 유치 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합리적이지 않은 불안이다. 대한민국의 현실과 위상에 맞는 새로운 중동 대(大)전략을 고대한다.

[[사설] 관세청 그냥 놔두고 대통령 "規制 개혁"은 공염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