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을 적극 돕겠다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의 직접 출자를 통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 총재는 한은 출자가 '손실 최소화'라는 중앙은행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들면서 출자 대신 '대출' 방식의 대안을 제시했다. 반면 정부 관계자들은 출자 방식이라야 신속한 자본 확충이 가능하다며 뒤에서 한은을 비난하고 있다. 이 총재가 "한은이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밝히면서 봉합되는 듯하던 양측 갈등이 며칠 만에 재연된 것이다.

이 총재가 제안한 대출 방식이란 글로벌 금융 위기였던 2009년의 '은행 자본 확충 펀드'를 모델로 하는 것이다. 한은으로선 구조조정에 협조하되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 논란을 피하느라 짜낸 고심의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에 쫓기는 준(準)비상 상황이다. 이 총재 말대로 대출 방식으로 할 경우 펀드의 설계에만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구조조정에 협조하겠다는 말도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 역시 한은과 긴밀히 협의하기보다 일방통행식으로 압박하며 한은의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 정부와 한은이 손발을 맞추어 일사천리로 진행해도 시간이 빠듯한데 아직껏 방법론을 놓고 공개적으로 신경전을 벌이니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이 답답해진다. 양측 발언의 행간에서 감정마저 느껴진다.

국가 경제를 놓고 보면 자본 확충 방식이 '출자'냐 '대출'이냐는 부차적 문제다.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의 사활이 달린 구조조정 작업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한은이 원하는 대출 방식이 이 신속·정밀 원칙에서 벗어나면 기관 이익일 뿐이다. 정부도 찍어 누른다는 반발을 사지 않도록 한은을 존중하며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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