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정진석,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11일 국회에서 4·13 총선 이후 처음으로 만나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 등 원 구성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야는 국회의장이 어느 당 몫이냐는 차원을 넘어, 국회 제도의 근본 개혁까지 논의하기 바란다. 지금 국회는 나라가 가야 할 길을 틔워주기보다는 가로막고 있다. 권위주의 독재 시대에 의회 방어 차원에서 만들어진 각종 제도가 민주화 이후 수명을 다했는데도 그대로 남아 국회 마비 아니면 폭력 사태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에 걸림돌이 되고 민주주의 원칙과도 상충하는 이상한 제도들이 수두룩한데도 고칠 경우 당장 자기 당에 불이익이 될 것이란 계산 때문에 방치되어 왔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당도 과반(過半)을 차지하지 못한 3당 체제가 성립됐고 또 내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민감한 제도를 고치더라도 누구에게 득실인지를 따지기 어렵게 된 지금이야말로 낡은 국회 제도를 개혁할 절호의 기회다.

시급한 것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알려진 현행 국회법 개정이다. 소수당이 반대하면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도록 한 이 법 때문에 지난 3년간 국회는 작동 불능 상태였다. 다만 개정의 전제는 민생과 관련 없는 정치 법안을 들고 폭주하는 세력에 대한 견제와, 폭력으로 의사 진행을 막으려는 행태에 대한 엄격한 단죄다.

법제사법위원회의 근거 없는 '상원(上院) 노릇'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국회법상 법사위 권한은 법률안 등의 체계·형식과 자구 심사로 국한돼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법안 내용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고, 이제는 여야 합의로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법사위원장 한 사람이 마음대로 가로막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나 이 월권(越權)을 지적했지만 야당만 되면 법사위원장 자리를 틀어쥐고 국회를 마비시켜 왔다.

어느 정당이 총선에서 분명히 승리해 과반 의석을 이룰 경우 국회의 모든 상임위원장을 맡아 책임 정치를 펴고 그 결과로 선거에서 심판받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인 미국이 이렇게 하고 있고, 우리도 12대 국회까지는 그랬다. 긴급한 현안이나 중요 사안이 아니라면 국회의 대정부 질문이나 상임위원회에 부처 장관의 출석을 요구하는 관행도 버릴 필요가 있다. 강제하는 법 조항은 없지만 보복이 두려워 장관 업무보다 국회 출석이 우선시되는 게 현실이다. 장관이 나오면 국장·과장 등 전 부처가 이동해 막대한 낭비를 초래한다. 대정부 질문 제도 자체의 실효성도 따져 봐야 한다.

정부 예산을 다루는 예산결산특위 산하 예산안심사소위는 모든 논의를 속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비공개하던 회의 속기록을 공개로 전환하니 정작 중요한 얘기는 정회 중에 따로 만나서 하고 있다. 국회 윤리특위가 19대 국회에서 처리한 징계안은 39건 중 1건뿐이다.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국회의장은 제1당이 맡는 것도 이론의 여지가 없도록 이번 기회에 제도화돼야 한다. 상임위 활동을 하는데도 또 국정감사를 별도로 해야 하는지도 논의해봐야 한다. 국감은 실적은 거의 없이 의원들이 정부기관에 힘을 과시하는 무대가 돼 있다. 국회가 여야만 합의하면 아무나 불러서 괴롭힐 수 있게 한 것도 점점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모두가 여야의 기득권을 놓지 않거나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계속 누리겠다는 것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여야가 여기에 손을 대지 않고 그저 자리 나누기나 한다면 20대 국회는 물론이고 다음 정권의 미래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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