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란?]

지난 13일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 회동에서 야당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한 정부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청와대는 "이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 불거졌다. 국회가 조사해달라"고 했다. 정치권이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인 것이다.

대통령은 5년마다 교체된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공무원들은 같은 자리에서 일한다. 재난(災難)이 발생해 애꿎은 국민이 생명을 잃으면 그때마다 정부 책임론이 등장한다. 대통령 책임을 묻는 여론도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공무원들의 무능과 무책임, 무사안일한 업무 처리 탓인 경우가 많다. 각종 재난에서 대통령이 최선을 다했는지를 분명히 따져야 하지만 근본 문제가 공무원 조직에 있다는 것을 알고 대처할 때가 온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비극이 전개된 지난 15년 동안 정부는 피해를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환경부는 살균제 성분의 인체 유해 여부를 확인해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난주 국회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당시 법에 근거가 없었다고 발뺌했다. 2007년 의료계에서 호흡기 괴질을 문제 삼았을 때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신속히 대처했더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2011년 판매 금지 후에도 검찰은 4년 넘게 수사를 미뤘다. 지금도 정부는 다른 유해 화학물질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 아닌지, 잠재적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어떻게 찾아 보상할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무원부터 징계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대처로 국가적 재난을 키운 사례는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2년 전엔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해양수산부와 해경, 행정자치부의 미숙한 초동 대처가 피해를 키웠다. 그러고서도 공무원 몇 명이 경징계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국민안전처를 만들고 해경을 해체하며 법석을 떨었지만 올해 초엔 한강 유람선이 안전 기준을 무시한 채 운항하다 침몰했다. 작년 38명이 희생된 메르스 사태는 어떤가. 질병관리본부 공무원들은 안이한 판단으로 첫 환자가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의 병동 전체를 통제하지 않아 메르스 확산에 불을 댕겼다. 온 나라가 공포에 빠진 것은 물론 대외 이미지까지 악화됐지만 질병관리본부 조직은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메르스 소동이 조직 확대의 기회가 된 것이다. 징계 대상 공무원 16명 중 소수만 중징계를 받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징계를 면하거나 감봉·경고 같은 경징계에 그쳤다.

나라를 뒤흔드는 재난을 겪어도 공무원들은 대부분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오히려 국가 재난을 자기들 조직을 키우면서 승진 파티를 즐기는 기회로 반전(反轉)시키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건국 이후 고도성장 시대에는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 발전에 앞장서고 국민을 위한다는 공복(公僕) 의식으로 일하는 공무원들도 많았다. 그러나 해마다 정부 규모는 커지고 행정 서비스는 세분화됐다. 공무원 숫자는 이미 100만명이 넘는다. 이렇게 조직은 거대화됐으나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살인 가습기' 비극에서 보듯 각 부처는 사고가 터지면 서로 내 소관이 아니라고 발뺌한다. 조직과 권한을 키울 때는 제 소관이라고 우기다가도 재난이 터지면 다른 부처에 미루는 것이다.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니 이제 국민은 행정부의 능력, 공무원의 자질(資質)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공무원들 규제가 성장을 막는 장애물이라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공무원의 부정적인 역할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관료 조직이야말로 '공공의 적(敵)'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러다가는 정부 무용론(無用論)까지 등장할 판이다.

공무원들이 불신을 받으면 치안·복지·질병 예방·환경 보호 등 국가의 기본적인 행정 서비스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그러면 국민은 더 불안해질 것이다. 정부는 당장 공직자 기강을 바로 세우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본분을 게을리한 공무원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형사처벌을 포함한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경각심을 갖고 공무원들에게 명확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할 시스템을 만드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당이 정권을 잡아도 공무원들의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설] 靑과 與의 인적 개편, 과연 국민들에 감동 전해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