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시사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누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5일 제주시에서 열린 관훈클럽과의 간담회에서 "내년 1월 1일이 오면 한국 사람이 된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그때 가서 고민,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또 "누군가 대통합 선언을 하고 국가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고 올해 72세인 자신의 나이와 관련해서는 "체력은 별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반 총장의 발언은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포럼에서 비공개를 조건으로 나왔다. 하지만 과거 대선 주자들의 출마 선언이 의외의 장소와 형식을 빌려 나온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반 총장이 작심하고 발언했다고 받아들일 측면이 적지 않다. 대선 출마를 강하게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야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시사하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반 총장은 이날 국회와 정당을 겨냥한 비판도 이어갔다. 그는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큰 문제인데 내부에서 분열된 모습이 해외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조금 창피하게 느낄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아주 좁은 커뮤니티 인터레스트(community interest·공동체 이익)나 파티 인터레스트(party interest·黨利) 등을 갖고 하는데 이건 정치가 아니라 정쟁(政爭)"이라고 비판했다.

반 총장이 국내 정치의 분열상을 지적하고 대통합 리더십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국민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말대로 1월 1일 한국 국민으로 돌아오면 당연히 대선에 출마할 피선거권이 있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10년 경험은 급변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타개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그는 기성 정치인들에 비해 때가 덜 묻었고, 이 때문에 대선 여론조사에서 항상 선두권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그런 인생 역정과 반 총장이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 적임인지 여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이 봉착해 있는 정치적 분열 상황, 경제적 정체 국면, 사회적 갈등을 돌파할 자질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차차 검증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 총장은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게 되면 당장 혹독한 국내 정치 환경에서 생존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가 여당으로 가든, 야당으로 가든 대선 후보가 되려면 당내 경선(競選)을 치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든 더민주든 당내 경쟁자들 때문에, 입당만 하면 대선 후보로 자동 옹립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반 총장이 빠른 시일 내 자신의 정치 세력을 결집시키지 못하면 당내 대선 후보 자리조차 낙관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친박 등 특정 정파(政派)와 손을 잡게 되면 그 세력의 등에 업혀 당내 정치를 해야 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특정 집단의 얼굴마담이라는 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 결국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단 몇 달 사이에 정치력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설] 朴 대통령, G7 북핵 외교보다 아프리카 순방이 더 급했나
[사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김앤장 '지정 좌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