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국내 4위 조선사인 STX조선의 법정관리를 결정한 데 이어 26일에는 중소 조선사인 SPP조선도 매각 협상이 사실상 결렬돼 법정관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박 신규 수주가 씨가 마른 상황이라 성동·SPP·대선조선 등 중소 조선 3사까지 줄줄이 퇴출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STX조선을 연명시키려고 산은 등이 3년간 쏟아부은 돈이 4조5000억원이다. 다른 중소 조선 3사에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지원한 돈도 3조4000억원이 넘는다. 결국 8조원 가까운 돈이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상황에 놓인 것이다.

조선사들 몰락 과정을 보면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 데 정치권과 정부, 국책은행이 한통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STX조선은 무리한 확장 탓에 5년 전 적자로 돌아섰으나 강덕수 당시 회장 등 경영진은 내부 혁신은커녕 저가(低價) 출혈 수주를 계속하고 조선소까지 더 지으며 자금을 지원받기 위한 정·관(政官) 로비에 열중했다. 3년 전 STX조선이 위기에 몰리자 부산·경남 지역구 여당 의원 7명이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을 불러 "과감하고 신속한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 야당 의원들도 다를 게 없었다. 역대 금융위원장들 누구 하나 좀비 기업 정리에 앞장서지 않았다.

가장 한심한 것은 국책은행들이다. STX조선 부실이 깊어지기 전 수술 기회가 있었던 강만수 전 산은 회장은 거꾸로 회사에 자금을 빌려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자율협약으로 STX조선의 경영권을 쥔 홍기택 전 총재는 금융 당국에 "면책권을 달라"며 책임을 피하는 데만 골몰했다. 성동조선에 2조2000억원을 지원하고도 회사를 살리지 못한 전·현직 수출입은행장들도 다를 게 없었다. 결국 부도덕한 경영진과 표만 생각한 정치인, 무책임한 금융 당국과 국책은행의 '정·관·업(政官業) 카르텔'이 수조원 국민 세금을 허공에 날리게 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카르텔이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여야 지도부는 조선사 노조를 찾아 '실업 피해를 줄이겠다' '근로자의 경영 감시를 보장하겠다'는 사탕발림부터 늘어놓았다. 금융 관료들은 구조 조정의 밑그림은 그려놓지도 않고 재원 조달 방법을 놓고 실랑이하며 금쪽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사를 망친 경영진은 나 몰라라 딴전을 피운다.

'정·관·업 카르텔'의 실체와 당사자들의 책임 소재는 감사원 감사나 국회 청문회를 통해 반드시 밝혀야 한다. 구조 조정을 방해한 정치인과 관료, 국책은행 경영진에 반드시 준엄한 심판이 내려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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