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1일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남용 방지법'을 제출했다. 국회가 법으로 정해진 기간 내에 체포 동의안을 처리하지 못해도 그다음 열리는 본회의에 자동 상정해 표결에 부친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후 72시간 내'에 표결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헌법은 현행범을 제외하고는 회기 중에 국회 동의 없이 국회의원을 체포할 수 없도록 해놓고 있다. 이 불체포특권은 과거 군사정권이 국회 위에 군림하며 억압하던 시절 의원들의 활동을 보호하고자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법망(法網)을 빠져나가는 시대착오적 특권으로 악용되고 있다.

19대 국회만 해도 정부가 낸 체포 동의안 11건 가운데 4건이 가결되고 2건은 정부가 철회했으나 나머지 5건은 부결되거나 폐기됐다. 뇌물 수수나 횡령 같은 파렴치한 짓을 저질러도 여야가 함께 '동료 의원'이라면서 담합하면 버젓이 현역 의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2013년 내란 음모 혐의를 받던 당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같은 사람마저 이 특권 뒤에 숨어 연명을 시도한 일도 있었다.

여야는 불체포특권을 없애겠다고 여러 번 국민 앞에 약속했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모두 공약했고 이후 법안도 여러 차례 제출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법안을 옆으로 제쳐놓고 국민 관심이 사그라들기만을 기다리는 듯한 행태를 보였다. 재작년과 작년에 낸 비슷한 내용의 법안도 결국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국회의원들에게 부여된 특권·특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免責)특권'을 포함해 손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불체포 방지법을 처리하는 이 한 가지를 보고 국민은 20대 국회의 변화 의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여야는 또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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