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은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밀결사인 한인애국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다. 그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중국 상해의 홍구(紅口·홍커우) 공원 행사장에서 일본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상해 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 김구의 중에서

4월 29일이었다.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며 가만히 윤 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이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일곱 점을 친다. 윤 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내게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멘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할아버지는 농민교육을 통해 나라의 힘을 기르고자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품고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갑니다. 할아버지는 떠나면서 차마 할머니께 말은 못하고 부엌에 계신 할머니를 한 번 더보고 싶어 물 좀 달라고 부르셨답니다. 물을 받더니 마시지는 않고 옆으로 치워 놓고 네 살 된 아들 종(淙)에게 "아버지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공부시켜 주겠다"라고 말하셨다고 합니다.

돈 많이 벌어서라는 말은 아마 독립된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둘째 아들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여동생의 남편감을 알아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였기에 식구들은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습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수줍음이 많아 평소에 할머니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셨답니다. 하지만 시동생 많은 시집살이에 힘든 할머니를 생각하여 야학을 나갈 때 아들 종을 안고 가서 수업을 하시기도 하고 할머니가 냇가에 빨래를 하러 가면 무거운 빨래를 말없이 날라 주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남녀의 일이 구분되어 있어 어른들은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런 자상한 면이 있는 분이라 그렇게 훌쩍 떠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청도에서 돈을 벌어 집을 나올 때 가지고 온 월진회* 회비를 갚고 상해로 가서 김구 선생을 만나 비밀결사인 한인애국단에 입단하게 됩니다. 김구 선생이 홍구 거사를 이야기하자 흔쾌히 받아들이고 준비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철저한 분이신지 나라 독립을 위한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거사 과정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거사 전 홍구 공원을 답사하며 폭탄을 던질 위치와 거리 및 방법을 연구하셨다고 합니다.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고 있던 정정화 여사의 말씀에 의하면 빈 공터에서 매일 봉투를 던지는 연습을 하시는 것을 보고 뭘 하고 있는지 물으면 건강을 위해 체력단련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홍구 공원 입장 시 일본 순사가 제지하자 일본말로 유창하게 내가 일본인이라는 것 말고 또 무슨 증명이 필요하냐고 말하며 의심을 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셨기에 거사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증조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보지도 못한 둘째 아들이 태어나 걸어 다닐 만큼 컸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에 할아버지는 돌아갈 수 없다는 답장을 보냅니다. 할아버지는 앞서 집을 떠나시면서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장부가 뜻을 세우고 떠나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글을 남기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증조할머니께 보낸 편지의 내용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집안 대소사 걱정 등 장남으로서의 책무를 못하는 불효에 가슴 아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순국 장면 사진을 보면 어떻게 죽음 앞에서 저리도 당당하고 두려움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남기신 말씀도 "사형은 각오했고 할 말은 없다"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남기신 유시(遺詩)를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 윤주원 (단국대 부속중학교 역사 교사)
(참고=여시동 저 '인간적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