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의‘황소’(1953년경) 그림. 제약사 영업사원 시절 이중섭 그림에 매료된 안 회장은 27년 만에 이 작품을 품에 넣었다. 그는 분신과도 같은‘황소’작품을 이번‘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 내놓았다.

나는 이중섭에 미친 사람이다. 이중섭 그림에 미쳐 형편이 닿는 대로 그의 그림을 모았고, 결국 그를 위해 미술관까지 지었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에 나온 그림 가운데 15점이 그렇게 모은 그림이다. 이중섭이 목숨처럼 그린 작품을 나는 목숨 걸고 모았다. 그 그림들이 국립미술관에 걸려 관람객이 찾게 돼 소장가로서 너무도 행복하다.

이중섭과 인연을 맺은 건 33년 전이다. 1983년 어느 날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해 들어간 성모병원 맞은편 액자 가게 처마 밑에서 '황소'를 처음 만났다. 액자집 아들이 크레용으로 성의 없이 그린 그림인 줄로만 알았던 그 그림은 내게 묘한 '기운'을 가져다주었다. 슬퍼 보이기도, 화나 보이기도 하는 이 '황소'의 눈에 이끌려 결국 7000원을 주고 그 그림을 샀다. 알고 보니 내가 그림인 줄 알고 산 황소는 이중섭의 유화 '황소' 작품을 프린트한 사진이었다. 이중섭이란 화가 이름도 그때 처음 알았다. 어쩌면 바로 이때 나는 '황소'를 둘 수 있는 큰 그릇을 꿈꾸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꼭 '황소' 진품을 갖고 멋진 곳에 '황소'를 걸고야 말겠다는.

하지만 '황소' 진품은 내 월급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오랜 시간 포기한 채 살아왔다. 대신 이중섭의 다른 그림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데 2010년 마음으로 연모하던 '황소'가 경매에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돈이 문제였다. 멋모르고 '황소' 진품을 구하러 인사동을 다녔던 젊은 시절에 이미 큰 기와집 한 채 값이라던 그림 값이 이제는 빌딩 한 채 값이 되어 있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경매 회사에 이야기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을 되팔고 나머지 금액만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엔 신기한 사연이 있다. '길 떠나는 가족'은 1952년 부산 르네상스다방에서 열렸던 동인전에서 한 젊은이에게 쌀 한 가마니에 팔린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중섭이 이 그림은 일본으로 간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라 나중에 일본으로 갈 때 가져가야 한다고 사정하면서 그 그림을 가지고 갔다고 한다. 다시 되돌려주는 대가로 그 젊은이에게 준 작품이 바로 '황소'였다.

경매에 '황소'를 내놓은 사람은 이중섭에게 '길 떠나는 가족'을 돌려준 바로 그 젊은이였다. 세월이 흘러 머리 희끗희끗한 노신사가 된 그분은 과거 자기가 샀던 '길 떠나는 가족'을 다시 품에 넣고 '황소'를 내게 준 것이었다. 이 얼마나 영화 같은 인연이란 말인가. '길 떠나는 가족'이 60년이라는 긴 세월 먼 길을 돌고 돌아 첫 주인에게로 갔듯 나에게 '황소'가 27년 만에 그 우직하고 용맹스러운 위용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달려와 주었다. 이 기구한 일은 '이중섭'이라는 화가와 내가 얽힌 인연의 끈을 새삼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이 사연 많은 '황소'가 지금 서울미술관이라는 외양간을 나서 덕수궁에 걸렸다. 나의 보물이면서 우리의 보물이 된 것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황소를 감상하며 그 안에 담긴 한 소장가의 이중섭 사랑도 조금은 읽어주셨으면 한다.

▲입장료: 성인 7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

▲문의: (02)522-3342, www.jungseob.com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수·토 오전 10시~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