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한 뉴욕특파원

['위안부 막말' 이나다, 日 방위상 된다]

지난해 7월 듣기만 해도 후련한 소송이 미국 법원에 제기됐다. 2차 대전 당시 종군위안부 관련 가해자들에게 피해 배상을 요구한 집단 소송이었다. 피고 명단에 아키히토 일왕과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최고위 인사들, 위안소 설치에 협력한 도요타·미쓰비시 등 20여 개 일본 대기업이 망라됐다. 명단에 실린 일본 정계 최고 책임자들과 전범(戰犯) 기업들을 보면서 많은 우리 국민이 위안부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고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위안부 피해자인 유희남·김경순 할머니를 원고로 내세워 소송을 대리한 미국 변호사 김모씨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그는 "제3국인 미국에서 세계인의 양심과 국제법에 의거해 정확한 판결을 받겠다"며 승리를 다짐했고, "지금은 두 명의 원고로 시작하지만 이 소송을 계기로 전 세계 1만명의 위안부 피해자를 소송에 참여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딱 그걸로 끝이었다. 이 소송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 잊혔다.

김 변호사가 엄청난 '흥행'몰이를 할 때 미국 현지의 위안부 관련 활동가들 가슴에는 걱정이 태산처럼 쌓였다. 1990년대에 비슷한 소송이 미국 대법원에서 패소한 판례가 있어서 미국의 유력 인권변호사들도 다른 방법을 찾으라며 만류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일 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미국 법원은 웬만하면 '관할권'을 문제 삼아 피하려 한다. 미국 법원이 '미국에서 재판을 하는 게 적당치 않다'는 이유로 기각하면 결국 피해자 할머니들이 패소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LA의 한 교민단체 간부는 "진실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건 너무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이고 패소했을 때 타격이 너무 크다며 김 변호사를 만류했지만 막무가내였다"고 말했다.

미 샌프란시스코연방법원 윌리엄 앨섭 판사는 소송이 시작된 후 1년도 안 된 지난 6월 21일 이 소송을 모두 기각, 위안부 할머니들은 완패했다. 패소한 것도 가슴 아프지만 판결문을 읽어보니 분노까지 치밀었다. "원고들이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법원은 인내심을 가지고 원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출하라고 여러 차례 기회를 줬는데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법원은 더 이상 원고들의 주장을 논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원고 측 변호인을 향한 질책이 느껴지는 판결문이다. 앨섭 판사는 지난해 말 미쓰비시와 도요타, 닛산 등 7개 일본 기업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원고 측 변호인에게 12월까지 소장(訴狀)을 수정해 제출하라고 했지만 역시 수정 소장은 제출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작년 7월 소송을 낸 이후엔 소송보다 더 몰두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뛰다가 지역구 경선에서 탈락해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그 사이 원고로 나섰던 김경순 할머니는 지난 2월, 유희남 할머니는 소송이 기각된 직후인 지난 7월 말 별세했다. 두 할머니는 이 소송에 어떤 기대를 걸었을까. 책임지지 못하는 공명심은 때로 죄가 된다. 그 장단에 생각 없이 춤춘 국민 여론도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 죄인인 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