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을 키우는 회계사 강현수(41)씨는 올해 초부터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지 않는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은 스마트폰으로 주문한다. "주말이면 차 막히죠, 사람 많죠, 그 북새통을 뚫고 아들 둘 데리고 가서 온갖 먹을 것과 물건을 이고 지고 나르는 과정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거든요. 매주 토요일만 되면 장 보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골치가 아플 정도로요. 그렇다고 장을 안 보자니 평일 내내 간식거리 하나 없이 손가락만 빨고 있을 애들 생각하면 또 걱정됐고요. 뒤늦게 알았어요. 요새는 모바일로 못 사는 게 없다는 걸요."

전날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배달되는 샛별 배송 박스. 채소나 과일, 소문난 동네 빵집의 빵과 유명한 디톡스 주스까지 주문할 수 있어서 인기다.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는 사람들이 늘고 대형 마트에 주기적으로 가는 사람은 줄고 있다.

강씨는 지난주 일요일 밤 3개의 모바일 앱을 드나들며 서울 마장동에서만 판다는 드라이 에이징 호주산 등심 600g과 전남 무안 달수고구마 한 상자,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다는 어느 유명 빵집의 크루아상과 바게트, 김치 3종 세트와 젓갈 3종 세트, 유정란과 햇사과칩 3팩, 키친타월 한 묶음과 구강청결제 2개들이 한 묶음을 사들였다. 그는 "공산품은 보통 마트보다 싸고, 육류나 채소는 마트보다 비싸지만 백화점보다 싸고 품질이 좋다. 배송도 빠르다. 장 보는 수고를 건너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최근 강씨처럼 마트를 아예 가지 않고 온전히 모바일로만 장을 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모바일 그로서리(grocery)족'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모바일 장보기는 부득이하게 마트에 가지 못하게 됐을 때 급히 인터넷으로 배달을 요청하는 정도의 개념이었다. 인터넷으로 장 보고 퇴근길 마트에 들러 물건을 찾아간다고 해서 '퇴장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게 2013년 무렵이다. 그러나 최근 모바일 장보기는 아예 기존의 장보기를 통째로 대체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익일 배송, 새벽 배송, 샛별 배송, 총알 배송 같은 서비스가 덧붙은 데다가 기존 마트가 제공하지 못하는 동네 구석구석 숨어 있는 먹거리를 찾아 배달하는 서비스가 더해지면서 모바일로 장을 보는 이들의 규모는 이미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각 업체가 제공하는 통계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작년 대비 100~200%씩 성장하고 있다. 인터넷 판매가 금지돼 있는 주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모든 제품이 모바일로 거래되는 형국이다.

"장보기도 노동이라서…"

방송인 김나영씨는 최근 아기를 낳으면서 큼직한 문어를 주문한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모바일 앱으로 주문했다는 문어였다. 임신과 출산으로 몸이 불편해지면서 해산물을 쉽게 구입하기 어려웠는데 온라인으로 뚝딱 구매할 수 있어 너무 편하더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실제로 업계에선 '모바일 그로서리족'의 상당수를 육아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 엄마들,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이 차지한다고 이야기한다. 고급 국내산 수산물을 모바일 앱으로 파는 '감동의 바다'의 신시준 부사장은 "사회 경험이 폭넓고 취향이 뚜렷한 30~40대 여성이 주 고객이다. 좋은 식당을 가볼 만큼 가본 사람들, 그런데 육아 때문에 몸이 매여 모바일로 쇼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래서인지 물건이 비싸도 좋으니 제대로 된 물건을 정확한 시간에 배달해주길 원한다"고 했다. 이 업체 고객들의 평균 구매액은 회당 10만원. 적지 않은 금액이다. 신 부사장은 "금태·전복·문어 같은 가격이 제법 나가는 식재료를 많이 찾는다.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많이 산다"고 했다.

문을 연 지 이제 1년 된 온라인 쇼핑몰 '마켓컬리'는 물건을 주문하면 이튿날 아침 7시에 집 앞에 배송 박스를 가져다 놓는 이른바 '샛별 배송'으로 고객을 폭발적으로 넓힌 경우다. 최근까지 가입자 수만 15만명,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 물건이 25가지였으나 현재는 1200여가지로 늘었다. 마켓컬리의 주요 고객 역시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와 마포구·용산구에 사는 30~40대 여성. 대개 회사원들로 추정된다.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처음엔 가격이 싼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정말 원하는 건 무조건 싼 물건보다는 좋은 물건을 고르느라 허비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 계속 믿고 주문해도 되는 품질을 유지시켜주는 곳을 찾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것은 채소·과일·계란이다. 김 대표는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많이 먹는 걸 가장 많이 주문하더라"면서 "하나라도 상한 것 없게, 깨진 것 없게 포장해서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렵다"고 했다.

'에피세리'는 주문 한 시간 만에 배달을 해주는 서비스로 가입자를 넓히고 있는 경우. 최근 석 달 만에 1700명이 가입했다. 동네 토박이 상점과 연계해서 제철 과일이나 유기농 채소 등을 대신 구입해 자전거로 배달해주는 식이다. 역시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 여성이 주요 고객이다. 매달 매출액이 20%씩 늘고 있다는 반찬 배달 업체 '배민프레시'도 30~40대 직장 여성과 싱글 여성이 고객이다. '집밥의 완성' 같은 반찬 브랜드가 전체 매출의 45%를 차지한다. 이 업체 류진 홍보팀장은 "장 볼 시간을 아껴 자기 계발에 힘쓰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주문을 많이 한다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날씨 따라 매출 달라지기도

실제로 오프라인 마트 매출은 점점 줄어드는 모양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오프라인 매장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2015년 -1.2%, 올해 8월까지는 0.2%에 그쳤던 반면 온라인 이마트몰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은 2015년 27.3%, 올해 8월까지는 24.4%로 매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날씨도 모바일 장보기에 영향을 미친다. 폭염이 극심했던 지난 8월 온라인 쇼핑 사이트 G마켓의 신선식품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22% 증가했고 한우는 172%, 배추·상추 같은 잎채소는 121%나 늘었다. 날이 춥거나 더워도 이젠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는 것이다.

모바일 장보기를 하는 소비자들은 그러나 그만큼 쉽게 싫증을 잘 내는 성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는 "여러 개를 주문했을 때 하나라도 품질이 안 좋으면 다시 주문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령 고기와 상추를 같이 샀을 때 고기가 아무리 좋아도 상추가 별로면 다시 주문을 받기 어렵다"면서 "모든 상품의 평균 품질을 꾸준히 끌어올리지 않으면 고객을 계속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