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검진을 받은 회사원 장모(52)씨는 키 170㎝, 몸무게는 73㎏이다. 비만 정도를 나타내는 체질량지수(BMI)는 25.3이다. 이 수치는 체중(㎏)을 키 제곱(단위·㎡)으로 나눈 값이다. 장씨는 의사로부터 "체중이 비만에 해당하니 살을 열심히 빼라"는 말을 들었다. 장씨는 본인이 뚱보라는 '판정'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변에 비슷한 키에 그 정도 체중인 사람은 널려 있기 때문이다.

현행 기준으로 장씨는 비만이 맞다. 한국·중국 등이 포함된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위원회는 지난 2000년부터 체질량지수(BMI) 23 이상은 과체중, 25 이상은 비만, 30이 넘으면 고도비만으로 분류했다. 미국 등 서양인은 BMI 30부터 비만에 속한다. 아시아인은 인종적으로 체중이 적은 상태에서도 당뇨병 등 만성질환에 잘 걸린다 해서 비만 기준을 낮게 잡았다. 하지만 최근 의료계 일각에서 이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 뚱보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비만 기준으로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대한비만학회는 최근 이 주제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비만 기준 높여 뚱보 낙인 줄여야"

비만 기준을 올리자는 주장은 현재 기준으로 살짝 뚱뚱한 사람들이 되레 사망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에 근거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와 호주 등에서 1062만 명을 대상으로 5년간 체질량지수와 사망률과의 관계를 추적 조사한 연구에서 어느 나라나 사망률은 체질량지수 24~25 사이에서 가장 낮았다. 다만 체질량지수 27.5 이상부터는 눈에 띄게 사망률이 증가했다. 지난 2011년 아시아 7개국 공동 조사팀이 114만여 명을 대상으로 9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도 체질량지수 22.6~27.5 사이에서 사망률이 낮았다. 살짝 과체중일 때 질병을 버티는 저력이 좋아서 그렇다는 설명이다.

한림대 의대 가정의학과 조정진 교수는 "현행 기준으로 우리나라 비만 인구는 미국보다 3~5%포인트 더 많은데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뚱뚱하다고 하면 믿겠느냐"며 "비만 기준을 체질량지수 27 정도로 하면 비만 인구가 20% 선으로 낮아지고 사망률 낮은 구간도 정상 체중 범위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19세 이상 성인 중 체질량지수 25 이상은 31.5%, 27 이상은 19.8%다(2014년 기준). 비만 기준을 27로 높이면, 비만 인구가 약 1300만 명에서 820만 명으로 줄어 500만 명 가까이 줄어든다. 일본비만학회는 근래 과체중 그룹을 없애고 체질량지수 25 이상은 비만, 25 이하는 정상으로 나눴다. 일본 건강검진협회는 남자는 27.7, 여자는 26.1까지를 정상 범위로 간주하고 있다.

◇"현행 기준 유지해야 '비만병' 예방"

비만 관련 의학자 다수는 단순히 체질량지수와 사망률과의 관계만으로 살짝 뚱뚱하면 오래 산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현재 기준 유지를 주장한다. 동국대 의대 가정의학과 오상우 교수는 "사망률은 인구 구조나 자살, 질병 변화에 따라 시기별로 확확 바뀌어 비만처럼 오래가는 질병의 위험 기준에 쓰이지 않는다"며 "요즘은 유방암이나 대장암 등 비만 관련 질병이 많이 늘어서 향후 체질량지수와 사망률 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 최근 나온 몇 개의 논문으로 십수 년 연구 끝에 나온 아시아인 비만 기준을 바꾸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김대중 교수는 "특히 한국인은 정상 체중에 배만 나온 마른 비만 상태에서 당뇨병 발생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비만 기준을 올렸다가는 비만 경각심이 줄어 당뇨병 환자가 대거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만학회는 일본처럼 현재 체질량지수 23~25 사이를 과체중으로 분류하는 것을 없애는 방안을 심의 중이다. 아울러 체질량지수 25 이상은 운동과 식이 조절이 필요한 생활습관형 비만, 30 이상은 약물치료가 필요한 의학적 비만, 35 이상은 '병적 비만'으로 명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