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감독인 차은택(47)씨가 미르 재단의 핵심이었다는 정황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순식간에 수백억원을 모은 재단에 일반인에겐 이름도 생소한 광고 감독이 등장하더니 이 사람이 실제 일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사진 선임도 주도하고 사무실도 후배 이름으로 빌렸다. 그는 미르재단만이 아니라 문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차씨가 주도한 사업에 관광진흥개발기금 145억원을 끌어다 예산을 갑자기 6배 이상 늘려줬다. 기획재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 증액을 요청하자 하루 만에 승인했다.

2015 밀라노엑스포 한국관 행사 감독은 불과 5개월 전에 갑자기 차씨로 바뀌었고 역시 예산이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 이란 방문 때 맺은 케이타워 프로젝트 양해각서엔 미르를 '한류 교류 주요 주체'로 명시했는데 정작 영문본에는 그런 말이 없다고 한다. 얼마 전 바뀐 문체부 장관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차씨와 특별한 관계였다. 이런 차씨를 문화계에선 정권 초반에 이미 '황태자'로 불렀다고 한다. 그가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이 최순실씨와 맺은 친분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이 무엇인지 밝혀져야 한다.

검찰은 미르·K스포츠 재단과 관련해 시민 단체가 최순실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을 뇌물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1주일 끌다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했다. 전경련과 다수 대기업이 관련되고 정부 고위 인사가 배후로 지목됐으며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 연루된 의혹 사건을 일반 고소·고발 사건을 주로 맡는 형사부에 배당한 것이다.

형사부라고 이 사건을 수사하지 못할 건 없다. 문제는 형사부 검사들은 고소·고발 사건에다 경찰에서 송치한 사건까지 1인당 매달 100건 이상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사건에 집중할 여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형사8부는 부동산 사건 전담 부서다. 이 사건은 국민적 의혹이 쏠려있는 데다 두 재단에 돈을 낸 대기업 대표까지 고발 대상에 포함돼 피고발인만 80명이 넘는다. 특수부 한 부서 검사 7~8명을 다 동원해도 힘에 부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가뜩이나 손이 부족하고 주요 업무까지 다른 형사부에 배당한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생각이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