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국방장관이 20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 배치 방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1년 365일 배치해 대북 억제력을 높이자는 안(案)은 우리 측 희망사항이었다. 그게 실현되면 미국의 핵우산 작동에 필요한 시간이 줄어 전술핵 재배치에 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론은 '앞으로 추가적 조치 방안을 검토해 나가자'는 식으로 났다.

전날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가 끝난 직후 윤병세 외교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내일 SCM에서 (미 전략자산 배치와 관련된) 협의가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의 긍정적 반응을 예상한 많은 언론이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보도했으나 오보가 되고 말았다. 미국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우리 측 요구에도 SCM 공동성명에는 '미 전략자산 상시 순환 배치' 같은 구체적 방안은 적시되지 않았다. 물론 중·러를 자극할 그런 예민한 내용을 문서에 담는 게 부적절하다는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미가 사실상 합의를 해놓고도 대외적으론 달리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국방장관 사이에 이견(異見)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SCM 직후 특파원 간담회에서 "우리는 그것이 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지만 (미국은) 앞으로 구체적으로 논의를 더 해보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미국이 우리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한 내용이다.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 전망도 밝지는 않다. 일년 내내 전략무기를 전개·유지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미국이 감수할지부터가 미지수다. 미국이 한국을 배려해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자신들의 전략자산 운용 계획을 고칠지도 불투명하다. 미국으로선 중국이 반발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같은 지역 현안이 첨예화되고 대북 제재 공조가 와해될 수 있다는 걱정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을 한·미 동맹 차원의 문제로 과대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동맹국이라고 해도 그들의 이익과 생각이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필요보다 우선한다는 냉엄한 현실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미국이 거듭 보장하는 핵우산이나 확장 억제도 미국의 이익과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미의 확장 억제에 대해 지나친 의구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가 지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 한다. 모든 준비는 그 기초에 세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