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개헌 블랙홀'로 빠져든 이유는...]

[[키워드 정보] 대통령 4년 연임제란?]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 정치에 대해 "대통령 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음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라며 개헌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 구도가 일상이 됐다"며 "정부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개헌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시작된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근본적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대통령의 일방독주와 여야의 극단적 대결이 이어지면서 이대로 가다간 정말 나라가 결딴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누구나 하게 됐다. 국민 과반(過半), 국회의원의 3분의 2 가까이 개헌 필요성 자체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간 정치권의 개헌 논의를 막아 온 가장 큰 힘은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국정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권 등에서 제기해 온 개헌론을 눌러 왔다. 지난 4월 "지금 개헌을 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나"라고 했고, 2주 전에도 여당 원내대표가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자 청와대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던 대통령과 청와대가 돌변하니 그 의도가 뭐냐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순실과 차은택·우병우 문제를 덮으려고 개헌을 꺼내 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란 식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달라진 상황 변화는 '최순실·차은택 의혹'으로 박 대통령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이름도 없던 최씨나 차씨가 저지른 무소불위의 전횡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 국민의 혀를 차게 하고 있다. 세간에는 '좌(左)순실 우(右)병우'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의혹 수사와 개헌 추진을 병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검찰은 우 민정수석의 지휘를 받고 있어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리라고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통령의 의도와는 별개로 어쨌든 개헌 둑이 터진 것은 사실이다.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선 국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 하나만 반대해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야권에선 문재인 안철수를 포함, 모든 대선 주자들은 물론 그동안 개헌을 주장하던 사람들조차 '대통령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반발한다. 개헌에는 야당의 참여와 국민적 동의가 필수적이고 그것을 위해선 대통령은 한발 물러서야 한다.

그렇다 해도 시일이 촉박하다. 내년 대선에 나설 사람들이 구체적인 개헌 공약을 한 뒤 집권 후 최대한 일찍 개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임기 내 개헌'을 내세운 박 대통령이 자신의 독자 개헌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지만 논란의 소용돌이만 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