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심정으로 쓴 외국인의 한국 소설. 프랑스·미국 소설가의 첫 장편 '속초에서의 겨울'과 '소주 클럽'이 최근 한국에 번역돼 나왔다. 예상을 뛰어넘는 한국적 감수성으로 충만하면서도 뚜렷한 개성으로 구별되는 소설. 프랑스인에게 버림받은 미혼모 어머니와, 속초를 찾은 프랑스인 여행자를 사랑하게 된 딸. 거제도 난봉꾼 어부 아버지와 함께 독도로 출항하게 된 아들의 투닥거림. 지난 21일, 스위스와 미국에 머물고 있는 두 작가에게 화상전화·이메일을 통해 각자의 사정을 들어봤다.

'한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내'

두 작가는 거의 한국인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 수아 뒤사팽(24)은 간단한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며 아예 "내 정체성은 한국인에 더 가깝다"고 말하는 여자다. 1996년 처음 한국을 찾아 2000년 이후 서울과 청주·조치원·거제도 등을 돌며 5년간 머문 팀 피츠(46)는 한국인 아내를 뒀고, 필라델피아 집에서 직접 막걸리를 담가 먹는다. "늘 자유롭고 안전한 느낌 속에서 돌아다녔다. 한국처럼 이방인에게 친절한 나라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소설에 이렇게 썼다. '캐나다가 아니니까 얼어 죽을 염려도 없고, 멕시코가 아니니까 괴한한테 목숨 잃을 염려도 없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 팀 피츠

'오징어 순대'와 '고구마 막걸리'

두 소설은 작중 부모의 고향 속초와 거제도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대도시가 아닌 끄트머리의 항구도시. 지리적·문화적 이해 없이 쓰기 어려운 이유다. 수아는 "2011년 가족과 여행 왔다가 묘한 쓸쓸함에 매료돼 2년 전 혼자 또 속초를 찾았다"며 "직접 취재도 하고 관련 서적을 총동원했다"고 말했다. 군사분계선과 포로수용소 등 현대사적 배경까지 담겼다. '다들 바라는데 왜 통일이 안 되는 걸까?… 몰라요.' 특히 음식은 작품을 음미하게 하는 속재료. '속초…'의 엄마는 딸에게 끊임없이 오징어 순대를 만들어 먹인다. 결핍을 요리해 딸에게 넣어 메우려는 모성(母性). '겨울과 물고기를 내보이며 속초는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에게 남은 건 오한밖에 없었다.' '소주 클럽' 속 아들이 사랑하는 엄마표 고구마 막걸리는 인공감미료가 들어간 소주만을 궤짝으로 마시는 아버지와의 대척점을 상징한다. "고기잡이는 장인어른, 막걸리 제조법은 장모님이 가르쳐주셨답니다."

'만화가'와 '소설가'

두 작품 모두 정체성에 대한 소설이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쓴 소설"이라고 말한 수아는 남자 주인공을 프랑스에서 속초로 여행 온 만화가로 상정했다. "만화가는 선으로 윤곽과 경계를 만들어 생각을 표현하죠. 소설 말미 어떤 윤곽도 경계도 없는 그림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는 만화가를 통해 국적을 뛰어넘는 인간의 화해를 의미하려 했어요." 팀은 주인공으로 소설가(본인)를 등장시킨다. 소설가의 삶을 이해 못 하는 가족과 대치하며 중년의 성장통을 겪는 인물. "모든 작가는 작가 본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어 해요. 하지만 '쓰기'에 관해선 그래선 안 된다는 게 미국의 불문율이죠. 그걸 깨고자 했어요."

'간결체'와 '만연체'

'속초…'는 영하의 날씨를 연상시키는 단문. "간결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영향이 엿보인다"는 평이 나온다. 수아는 "그의 공쿠르상 수상작 '연인'의 열렬한 독자였다"면서도 "아류가 되지 않으려 끊임없이 떨쳐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소주 클럽'은 활달한 수다로 가득하다. 팀이 "마약을 한 것처럼 가끔 1시간 만에 3000자를 써내려갔다"고 할 정도로 구수한 입말과 가쁜 호흡이 휘몰아친다. 차기작도 한국을 배경으로 한 같은 문체의 소설이 될 전망. 수아는 "한국·일본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계획 중"이라 말했고, 팀은 "큰 정치적 변화를 앞둔 한국의 상황을 쓰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