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바라 고이치

지난 21일 '한국인이 반한(反韓)시위 현장에서 프리 허그(Free Hug)를 해보았다'라는 제목의 2분30초짜리 동영상이 유튜브에 떴다. 동영상 속 거리는 올 초 일본 극우파 시위가 한창인 오사카 번화가. 한복 차림 젊은 여성이 시위대 지척에 손글씨 피켓 한 장을 세워놓고 검은 안대로 두 눈을 가린 뒤 두 팔을 벌리고 선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근처에서 반한 데모가 벌어지고 있지만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허그(포옹)하지 않겠습니까.'

그 뒤에 벌어진 일을 담담하게 기록한 동영상이 일주일 새 한·일 네티즌 22만명을 불러모았다. 힐끔거리며 지나치던 행인이 하나둘씩 다가와 쑥스러운 얼굴로 여성을 꼭 껴안아주고 가는 장면에 많은 사람이 찡해졌다. 동영상을 만든 일본인 구와바라 고이치(桑原功一·31)씨는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니 기쁘다"고 했다.

이번 동영상은 최근 5년간 그가 한·일을 오가며 진행한 9번째 이벤트다. 한국인이 일본 거리에 선 적도 있고 일본인이 한국 거리에 선 적도 있다. 피켓은 언제나 국적을 밝히며 "혐한(嫌韓)·반일(反日) 감정을 넘어 포옹하자"는 내용이다. 구와바라씨가 직접 등장한 적도 있고, 오사카 영상에 나오는 한국 유학생 윤수연씨처럼 동참자도 있다.

그는 가나가와현에서 온천여관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전엔 영어 강사도 했다. 2008년 필리핀에 있는 영어 어학원에 다닐 때 두 살 위 한국인 룸메이트와 석 달간 한방을 쓴 뒤 이 일을 시작했다.

지난 2월 일본 오사카 반한(反韓) 시위 현장에서 열린 프리허그 이벤트에서 한 일본인이 한국인 유학생 윤수연(한복 입은 이)씨를 안아주고 있다. 구와바라 고이치씨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프리허그 이벤트를 열고 유튜브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는 어떤 도시?]

"그때까지 저도 '한국인은 일본인을 미워한다'고 막연히 무서워했어요. 어학원 학생 90%가 한국인이었고 일본인은 10%가 안 됐는데, 룸메이트 형이 제가 혼자 밥 먹지 않게 늘 같이 먹고, 연애·진로 얘기도 하며 친동생처럼 챙겨줬어요. 상대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 자기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는 걸 알았어요."

그가 만든 동영상은 총 18개다. 유튜브에서만 500만명이 보고 갔다. "감동했다" "울었다" 등의 반응이 대다수지만, 가시 돋친 반응도 있다. 일본 네티즌이 "이런 이벤트를 하니까 혐한이 된다"고 이죽거린 경우도 있고, 한국 네티즌이 일본 욕을 단 경우도 있다. 그가 2011년 처음 피켓을 들고 서울 거리에 섰을 때 부딪힌 것도 이런 식의 증오였다.

"중년 남성이 '○바리!'라고 소리쳤어요. 뜻을 몰랐지만 마음이 흔들렸죠. 그때 안경 쓴 고등학생이 다가와 저를 포옹했어요. 그 순간 가슴속 응어리가 풀렸고 '사람을 믿자'고 마음먹었죠."

▲29일 자 A25면 '혐한·반일 감정 넘어 포옹합시다' 기사 사진 설명에서 윤수연씨는 재일 동포가 아니라 한국 국적 유학생이기에 '재일 한국 유학생'을 '한국 유학생'으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