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시계 일단 늦추고… '대타협의 1주일' 갖는 정치권]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단축 제안에 대해 야 3당은 담화가 나오자마자 즉각 시간 끌기 꼼수라며 예정대로 대통령 탄핵 표결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탄핵 전열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술수 아니냐는 것이다. '대(對)국민 담화'가 아니라 '대비박(非朴) 담화'라는 말까지 나왔다. 문재인·안철수 등 대선 주자들도 똑같은 입장을 밝혔다.

반면 탄핵 찬성 입장인 새누리당 비박계는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제안한 이상 당초 표결 예정일이었던 다음 달 2일은 이르다고 보고 7일경까지 여야 간 협상을 지켜본 뒤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9일 탄핵을 표결하자고 제안했다. 일종의 절충안이다. 탄핵안 가결·부결의 열쇠를 이들 비박계가 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뜻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야당들이 대통령 담화가 나오자마자 거부한 것에 이유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 일정을 밝히지 않고 국회에 공을 넘긴 데다, 대통령 담화에 때맞춰 새누리당 친박(親朴) 의원들이 앞에 나서고 있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지 않으냐고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제안에 다른 의도가 담겼든 아니든 여야가 퇴진 일정에 합의하면 그것으로 상황은 종료되는 것이다. 합의해보려 노력하지도 않고 대통령의 임기 단축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걷어차 버리는 것은 정략적이기에 앞서 경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순실 사태에 무임승차한 야당들은 최소한 난국을 수습해 국정을 연착륙시키는 데는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날 대통령이 제시한 방안은 여권이 아니라 야권에서 먼저 나온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며칠 전까지 "스스로 결단하고 퇴진을 선언하고 질서 있게 퇴진할 수 있는 방안을 국회와 협의하기 바란다"고 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이 방안을 자신이 가장 먼저 제안했다고 내세우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이 자진 퇴진 제안을 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그런 얘기를 했다가 막상 대통령이 제안하자 거부하고 나오는 것 같다. 이 사태 이후 야당이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뒤집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제는 거의 안면 몰수하듯 한다. 무책임에도 정도가 있다.

지금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이 조기 퇴진하겠다고 천명한 것이고 불분명한 것은 그 퇴진 시기다. 퇴진 시기를 놓고 여야가 무한정 협상을 지속할 수는 없다. 어차피 야당이 제시한 탄핵 표결 시한은 다음 달 9일까지다. 그렇다면 그 기간을 시한으로 정하고 박 대통령 퇴진 시기를 협상하되 불발되면 애초 예정대로 탄핵안을 표결하면 된다. 9일 표결을 하려면 협상 시한은 7일까지가 된다. 협상이 시작되면 야당은 즉각 퇴진하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무책임한 태도다. 27일 정계 원로들은 대선 준비와 국정 수습 일정을 감안해 내년 4월을 퇴진 시한으로 제시했다. 합리적인 제안이다. 여야가 '4월 퇴진'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되 협상 결과에 따라 한 달 정도는 당기거나 늦출 수 있다. 극렬 세력 아닌 보통 국민들은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퇴진 시기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거국 중립 총리를 추천해 국정 전반을 맡도록 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 이상 가는 수습 방안이 없다.

여야 협상이 이뤄지려면 먼저 친박계가 빠져야 한다. 친박계는 이 사태의 공동 책임자이자 박 대통령을 대리하는 이해 당사자다. 박 대통령이 퇴진을 언명한 마당에 협상장에 나와 시기를 흥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에 맞지 않는다. 괜한 의심만 살 뿐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 모든 것을 일임한 이상 정세균 국회의장 중재 아래 여야 3당 원내대표가 협상하고 친박계는 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